8월17일
몹시 덥고 습해 친구가 아닌 사람들도 노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맥주를 들이켜는 어느여름밤이었다. “저한텐 이상한 일이 굉장히 많이 생겨요. 낮에 본 영화 배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퇴근길 서점에서 집어 든 책 뒷표지에 들어가 있다거나, 같은 음악을 이틀에 네 번이나 다른 편곡으로 듣게 된다거나, 무작위로 읽은 소설 두 권의 작가가 생일이 같다거나 그런 신기한 일이 믿을 수 없이 자주 일어나요. 무슨 별자리처럼 막 연결되면서….” 나는 손으로 허공을 휘적거리며 늘어놓았다. 남들 앞에서 처음 떠벌리는 얘기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땅콩을 씹으며 고개를 까닥하곤 한 귀로 흘리곤 했다. 정색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대꾸해준 사람은 홍상수 감독님이 처음이었다. “전혀 이상한 게 아니죠. 우연은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걸 보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것뿐이에요.” 취한 나는 감독님의 짤막한 코멘트가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열쇠인지 당장은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날의 대화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을 거치면서 내 머릿속에서 점점 부피를 더해갔다.
“우연의 일치? 물론 살다 보면 그런 거 있지!”라고 너그럽게 말하긴 쉽다. 영화 속 대사 한 줄로 슬쩍 그런 통찰을 내비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지는 우연과 우주의 비밀에 관한 가설은 <해변의 여인>에서 주인공 중래(김승우)의 입으로 꽤 직설적으로 설명된 바 있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은 우연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확신한 나머지 그것을 영화 만들기의 원칙으로 삼아버린 예술가다. 한 줄도 안되는 모티브를 갖고 좋아하는 배우들을 모아서 첫 소절을 대뜸 연주해버리고 이튿날 아침에 떠오를 악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영화 만드는 작업이 어떤 ‘위원회’의 산물, 겹겹의 절충과 포장을 거쳐 나오는 세공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오늘의 세계에서 겁도 없이! 이번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혹시 재미있는 융합과 연결이 끝내 일어나지 않으면 대안이 있을까? 따위의 극히 마땅한 회의(懷疑)는 이제 홍상수 감독의 결계(結界)를 범접하지 못한다. 유사 이래 대부분의 인간이 통제하기 위해 안달해온 자연과 현실의 예측 불가능성을 겁내기는커녕 그는 그것을 끌어안고 춤을 춘다. 그렇다고 자연을 흉내 내려는 야심이 읽히진 않는다. 거꾸로 홍상수는 자신이 자연에 가능한 한 가까이 가기 위한 인위를 고안하고 있음을, 예술의 작위성을 누구보다 명징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는 작가다. 나는 지금 홍 감독의 방법론이 다른 모든 영화 만들기 공정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의 메소드가 매우 독창적이고 만들기의 과정과 결과물이 나란히 아름다우며, 이번 생에서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최선의 진실에 영화 매체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귀하다. 그런 느낌이다.
일반적인 인터뷰에서는 유효하지만 홍상수 감독과의 인터뷰에서는 쓸모에 가닿지 못하는 질문들이 제법 있다. 그에게 영화의 구상은 이야기의 형태로 임하지도, 하나의 결정적 이미지로 다가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은 다음과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찰흙덩어리 같은 걸 던져놓으면 배우와 영화를 찍기로 한 그날의 모든 것이 하나씩 거기 붙어 굴러가면서 영화가 나아가는 거예요.” 가령 이런 예. 우산을 펴는 두 사람을 찍었는데 우연한 실수로 연결 숏에서는 한 인물만 찍혔다. 자, 어찌할까? 홍상수는 다시 촬영하는 대신 한 사람이 우산을 접는 숏을 찍는다. 우산을 접는 컷은 며칠 뒤 영화 뒤쪽 에피소드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예기치 않았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나는 홍상수의 관객은 형식적으로 가장 순수한 예술인 음악의 청중과 유사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믿는다. 유명한 격언.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
8월18일
무심코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홍한별 옮김)을 책장에서 뽑아 뒤적거리다 마침 키워가던 우연에 관한 미신이 부쩍 강화되고 말았다. 발터 베냐민에 관한 손택의 에세이 <토성의 영향 아래> 중 다음 구절들은 어찌나 홍상수 감독 영화의 인상과 흡사한지, 사거리로 뛰쳐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소리쳐 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첫째 “베냐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주요 연구와 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다”. 이 정도는 웬만한 문필가나 예술가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러나 ‘기질’이라는 특정한 단어가 내 덜미를 잡았다. ‘기질’은 언어가 짓는 구획을 대체로 불신하는 홍상수 감독이 영화 만들기 방법론을 설명할 때 그나마 흔쾌히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홍감독은 다음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영화를 그렇게 찍는- 준비 없이 촬영에 착수하고 당일 아침 시나리오를 쓰는- 이유는 배우와 스탭을 굳이 고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겐 준비해서 내보이는 것은 가짜라는 오랜 강박이 있다. 조금 노력하면 남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이 들 때도 노력해서 나오는 건 가짜 같았다. 곧이어 홍상수 감독은 늘 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백지를 펼쳐 오른손으로 성냥개비 무더기 같은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꽤 자연스럽고 괜찮아 보여요.” 그런 다음 그는 왼손으로 펜을 옮겨 쥐고 같은 그림을 그렸다. 조금 더 어눌한, 흔들리는 그 그림을 가리키며 감독님은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리고 나면 아까 오른손의 그림이 가짜인 게 보여요.”
<토성의 영향 아래>를 계속 읽어보자. 베냐민은 <베를린 연대기>에서 사람이 길을 잃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헤매 다니는 법을 아는 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손택은 베냐민이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능력 덕에 여행을 사랑하고 헤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됐다고 쓴다(지도를 볼 줄 모르는 무능함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점에 유의하자). 노동의 시간과 분리된 무목적적 소요의 기술, 이것은 홍상수 영화의 ‘기술’(art)을 함축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북촌방향>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영화의 기억을 간직한 채 다음 구절을 읽고 “찌찌뽕”을 외쳐주면 신나겠다. “베냐민은 과거에서 떠올린 것 전부를 미래에 대한 전조로 간주한다. 기억이라는 작업은 (스스로를 뒤에서부터 읽어나가는 것이라고 그는 부른다) 시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거부한 베냐민의 회상에는 시간적 순서가 없다.”
8월20일
홍상수 감독님을 인터뷰했다. 옆 테이블에서 모르는 이가 들었다면 우리의 문답이 곧 개봉할 영화가 아니라 화학이나 건축, 요리에 관한 대화였다고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앞엣것이 뒤엣것에 영향을 주지만 뒤엣것도 앞엣것에 다른 걸 끼얹기도 하고…”, “한정된 구역에 머무르는데 A동에서 B동으로 이동하는 쾌감이… ”. 연방 덤불을 두드리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즐거웠지만 무력했다. 내게 말과 글이 아닌 다른 도구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아니다. 내겐 더 잘 벼려진 말과 글이 필요할 따름이다. 양손이 다 왼손 같았던(나는 오른손잡이다) 날. 열 손가락이 몽땅 엄지가 된 양 둔탁했던 날.
8월27일
마침내, 드디어, 이윽고! 영화제에서 놓친 뒤 마음의 빚으로 남았던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를 보았다.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의 생을 복기한 이 작품의 러닝타임은 330분. 시네마테크로 출발하기 전, 5시간 반 비행으로 당도할 수 있는 도시들을 지도에서 그려보았다. 방콕, 아니면 캄보디아 시엠립. 과연 <카를로스>의 관람은 이코노미 클래스 여행과 유사했다. 비장한 각오와 비좁은 좌석, 옆자리 손님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 물병과 비상시 열량 공급용 캔디, 무릎 담요. 기내식이 허용되듯 관객이 살며시 먹는 기척도 그닥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심지어 초콜릿 향기가 코끝에 닿았을 때는 기운이 북돋워져 고맙기까지 했다. TV방영을 전제로 제작된 ‘대하드라마’답게 <카를로스>는 올해 본 어떤 영화보다 푸짐한 오락성 패키지였다. 복잡하게 가지 치는 플롯을 전달하는 솜씨가 어찌나 명쾌한지 교육적이기까지 했다. <카를로스>의 편집은 뒤로 갈수록 다소 기력을 잃고 튀는데 묘하게도 그것은 영화적 결점이 아니라 이 혁명가의 말년이 취한 모양새를 자연스레 반영한 결과처럼 느껴졌다. 혹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다보니 영화랑 정이 들어 내가 관대해진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