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진실의 힘
2011-09-19
글 : 문석

시사회 자리에서 <도가니>를 보다가 뛰쳐나갈 뻔했다.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장애를 가졌고 살갑게 돌봐주는 이가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끔찍한 짓거리를 벌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기란 괴로운 일이었다. 그 괴로움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쏘우> 방식, 아우슈비츠 스타일, <13일의 금요일> 기법 중 택일- 를 고민하고 있었다. 곧 그 분노는 스스로를 향했다. 그들이 그런 범죄를 버젓이 저지르도록 내버려둔 건 바로 나 그리고 우리였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를 받고 세상에 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록 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 또한 결국 우리 탓이니까.

사실 <도가니>의 울림은 영화 자체보다는 소재와 그것을 형상화한 원작에서 비롯된 듯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게 실화라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이다. 공지영 작가에 따르면 실제 사건은 영화나 소설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지독했다. 그 말은 현실에서는 교장이 더 역겨운 인간이었고 행정실장이 더 악마에 가까웠으며 교사들이 더 비겁했다는 얘기일 터. 영화적 구성의 허술함이 다소 엿보이지만 <도가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의 무감각과 침묵을 질타한다는 점에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이런 감정이 극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쉽게 휘발된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점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뤘다는 <숨>도 궁금해진다.

전통적으로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온 장르는 다큐멘터리였다. 다큐멘터리가 진실과 객관을 가장한 허구라는 사실을 들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다큐가 중요한 존재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다큐가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좋은 다큐는 사실보다는 진실에 가까이 갈 때 만들어진다. 아무리 적나라한 폭로라 할지라도 세상과 삶의 진실을 비추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잠깐 동안의 충격파만 일으킬 뿐일 테니 말이다. 최근의 <경계도시2>가 그랬고 <종로의 기적>이 그랬듯 언어로 치환되기 어려운 달콤쌉싸름하고 매콤찝찔한 진실이 함께할 때 그 힘은 진정으로 발휘된다.

이번 특집 기사를 보니 최근 한국 다큐 진영이 많은 변화를 꾀하는 모양이다. 과거의 단순무식과격성을 버린 지는 꽤 됐지만 대안의 좌표는 아직 찾지 못한 듯 보인다. 다양한 다큐 프로젝트들이 너른 스펙트럼 안에 산재해 있다는 건 그들의 길찾기가 꽤 치열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하지만 그건 풍부하고 신선한 다큐들이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분명한 것 하나. 한국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진실 찾기가 격렬해질수록 <도가니>보다 수십배, 수백배 끔찍한 우리의 현실 또한 선명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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