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우리가 사는 여기가 몰상식과 야만의 도가니
2011-09-27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소설 <도가니>의 공지영 작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도가니>는 극단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너무 나간’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실화이고, 그래서 영화와 실제 사건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실체와 관련된 질문을 감당해줄 사람은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뿐이었다.

-영화를 보고서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거 없다. (웃음) 다만 정말 수고가 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 작품이 스토리가 강해서 영화로 만들기 쉬울 것 같다고 그러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도 송해성 감독이 얼마나 화를 냈는지. (웃음) 영화를 보기 전에 걱정했던 건 인호 역을 맡은 공유였다. 너무 잘생기기만 한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와 어떻게 맞을까 했는데, 다행히 내가 쓴 것보다 더 멋있는 강인호를 만들어주었다.

-원작자로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면.
=폭행이 일어나는 장면은 내가 쓸 때도 힘들었지만, 눈으로 보려니 더 많이 아팠다. 아역배우들을 고사 때 처음 만났는데, 사실 그때부터 가슴이 철렁했었다. 실제 사건의 아이들이 폭행당했을 나이의 배우들을 보고 있으니 먹먹해지더라.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을까 싶었는데 너무 잘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아이들이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준 영화라고 하더라.

-다른 소설을 준비하던 도중, 어느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하게 돼 <도가니>를 쓰게 됐다고 했다.
=평소에도 그렇게 쓰는 편인데, 그때는 꼭 신들린 것 같았다. 자료 조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사건이 괴상망측했고, 묘한 구석이 있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성폭행과 성추행이 거의 은폐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MT를 가서 선생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성폭행을 하는 일도 있었다. 인간의 마성을 본 것 같았다. 또 어떻게 이런 일이 묵인될 수 있었을까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의아했던 건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른 점이었다. 첫 재판에서는 법정구속으로 징역 5년이 판결됐다. 검사는 3년을 구형했는데, 죄질이 워낙 나빠서 5년이 된 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얼마 가지 않아 촛불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사이에 2심에서 집행유예로 판결이 난 거다. 촛불시위 당시 아이들을 돕던 분들은 더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시위의 열기에 가려 기사 한줄 나지 못했던거다. 물론 나 역시 관심을 갖지 못했던 거고. 만약 서울 강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나라가 뒤집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미안했다. 다들 커다란 문제만을 이야기할 때, 눈길이 가지 않은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취재를 하는 동안 가해자쪽의 압박은 없었나.
=한번 연락이 왔었다. 내심 반가웠다. 나로서는 그들이 나름대로 교묘한 악인이어서 나를 헷갈리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평론가들이 최고로 꼽는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만나보니 정말 저급하더라. 그 당시 학교의 월급 교장이 왔는데, 애들이 원래 문란하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할리우드영화를 많이 봐서 현실의 악인도 교묘하고 똑똑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저 야만일 뿐이었다. 당시 그쪽에서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 생각도 있다고 했다. 듣다듣다 변명이 우스워서 그렇게만 해주면 영광이라고 했다. 소송을 걸어주면 책도 엄청 팔릴 테고,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건 만큼 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거라고. 결국 이를 갈면서 돌아가더라.

-영화를 본 관객이나 책을 읽은 독자들이나 이 이야기가 실화와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교장과 행정실장이 쌍둥이라거나, 청각장애자인 소녀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설정들이 상당히 강렬했다.
=쌍둥이 설정은 만든 거다. 연두가 음악을 듣는 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나도 그때 알게 된 건데, 청각장애라는 게 주파수의 문제라고 하더라. 고주파 소리만 듣는 아이도 있고, 그것만 못 듣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었다. 실제 교장 쪽에서는 아이가 음악 소리를 들었다는 걸로 꼬투리를 잡았다. 대를 이어 장애인학교를 운영해왔다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몰랐다는 거지. 실제 법정에서도 이 부분을 입증할 때 긴장감이 상당했다고 들었고, 소설적인 장치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뿐만 아니라 남자아이까지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교장까지 성폭행에 가담했다는 것도 취재로 알게 된 부분이었나.
=남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과 아이들을 도왔던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거다. 교장의 실제 범죄 또한 내가 쓴 그대로다. 일부러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들만 골라서 그런 짓을 저질렀더라. 지금도 이런 일은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친구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가끔 시각장애인인 딸을 데리고 온다더라. 사연을 들어보니, 아이를 그냥 놔두면 동네의 모든 남자들이 달려들어 건드린다는 거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힐 텐데…. (잠시 한숨) 사람들이 모른 척하면 그런 일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보냐고 그러는데, 범죄자들은 그런 마음을 노리고 더 활개를 치고 있다. 햇살이 곰팡이를 죽이듯, 사람들이 제대로 한번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거다.

-소설은 무진이라는 지역사회의 은밀한 커넥션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아무래도 사건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게 아닐까 싶더라.
=취재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하면서 나온 거다. 상류층끼리의 연대는 더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제는 공부라도 잘해서 신분 상승을 하는 일도 없지 않나. 한 법조인에게 들었던 말도 중요한 힌트가 됐다. 판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1점, 2점 차이로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벙어리 애들 때문에 옷자락을 더럽히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집행유예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뻔해 보였다. 서울에서도 그러는데, 실제 사건이 일어난 곳은 더군다나 지방이었으니까.

-영화에서는 그런 커넥션이 다소 덜 묘사된 것 같다.
=나도 그건 조금 아쉬웠다. 시청, 경찰서, 교육청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데,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담아내기가 힘들었을 것 같더라. 그래도 사람들은 알아보는 것 같았다. 시사회 때, 소설을 읽지 않은 주위 사람 몇명을 데려갔는데, 충분히 공감하더라. 아무래도 지금의 현실이 딱 그런 모습이니까, 척하면 삼천리로 알아볼 수밖에 없는 거지.

-실제 사건은 현재 사법적으로 종결된 상태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취재할 무렵에 교장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전해들은 바로는 교장은 병상에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는 결백하다고 주장했단다. 그런데 결국 혼수상태에 이르렀을 때는, 소리를 질러가며 하나님을 찾고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했다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소름이 끼쳤다. 행정실장에게도 안 좋은 일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교장 여동생의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대부분 다 복직됐다. 말이 안되는 거지. 그런 나쁜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나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런 나쁜 사람을 밝혀놓으면 사회가 상식적인 선에서 처벌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다. 그게 진짜 도가니다.

-소설에서 지적한 사회의 단면은 2011년인 지금에 와서 더 불거지고 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한 시대일 것 같다.
=영화가 처음 계획대로 빨리 제작돼서 지난해에 개봉했으면 파급력이 덜했을 거다. 나도 소설을 쓸 때보다 지금에 와서 더 많은 분노감을 느낀다. 결국 이 모든 게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은 아이들에게 있다.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지금의 10대들을 보면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자살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한편으로는 상류층의 위선이나 신앙의 문제, 사랑의 문제 등 생각하고 있는 소재들이 많다. <도가니>를 쓰면서 들은 법조인들의 이야기에서 ‘김앤장’에 대해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시사IN> 주진우 기자에게 많이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웃음) 사실 내가 어두운 이야기만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닌데, 곳곳에서 온갖 자료와 함께 어떤 사회문제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나보다 더 젊은 이들이 더 많이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곳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이대로는 정말 한국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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