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판.판]
[이영진의 판판판] 상생의 배급?
2011-09-26
글 : 이영진
<카운트다운> <투혼> 등 공동배급하는 영화 증가 추세
<투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쉬운 일이 그러하니 어려운 일은 물론이다. 한데 이 말이 무한경쟁을 철칙으로 여기는 영화배급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까. 단정할 수 없지만 하반기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들을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닌 듯하다. 경쟁관계인 투자배급사들이 한데 손을 잡고 공동배급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9월29일 개봉하는 <카운트다운>은 NEW와 싸이더스FNH가 함께 배급한다. 10월6일 개봉하는 <투혼>은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시너지가 공동배급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시너지의 협력은 <투혼>만은 아니다. <Mr. 아이돌>(10월 중 개봉)과 후반작업 중인 <특수본> <페이스메이커> 등도 공동배급 작품이다. 이미 개봉한 <소스 코드> <콜롬비아나> 등 외화 2편까지 포함하면 올해 라인업 중 6편을 두 회사가 공동배급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팀장은 “시너지쪽에서 올해 초에 제안을 해왔는데 양쪽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고,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공동배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동배급의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CJ-시네마서비스가 공조를 택했고, 최근에는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를 CJ-롯데-쇼박스 3사가 공동배급했다. <황해>(쇼박스, 이십세기 폭스코리아)처럼 할리우드 직배사가 조력자로 참여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공동배급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결정이거나 미담에 해당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였던 것과 달리 최근 투자배급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비즈니스 차원을 배제할 수 없으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현재의 시장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협력의 측면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시너지의 김동현 이사는 “중소 배급사가 일정한 편수의 라인업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상당한 현금이 필요하다. 영화투자펀드들이 기존의 투자배급사들과 어떤 식으로든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부족한 자본을, 그것도 양질의 자본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고 공동배급 결정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입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다. 이전처럼 편수를 늘려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동배급을 택했다고 보긴 어렵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팀장은 공동배급의 이점으로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을 수급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페이스메이커>의 제작자인 드림캡쳐 김미희 대표는 “많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현재 투자배급사들은 색깔이 정해져 있다. 그건 특색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하다. 공동배급은 다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큰 버젯의 영화들에 접근하기에도 용이하다”고 말한다. 싸이더스FNH의 한 관계자도 “우리 회사의 경우 공동배급은 <카운트다운> 한편에만 적용되지만 앞으로 이러한 공동배급은 더욱 늘어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시너스의 김동현 이사도 “지금까지 투자배급사들은 혼자서 뛰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공동배급 외에도 탄력적인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방안 등이 활발하게 마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동배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또 다른 자본의 새판짜기의 시발점으로 돌변할지 단정할 순 없다. 다만 자본, 콘텐츠,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기업-중소 배급사, 중소 배급사-중소 배급사가 머리를 맞대는 일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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