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테일러 로트너] 셔츠는 벗어줘
2011-09-29
글 : 이영진
<어브덕션> 테일러 로트너

“이번 주말 남자친구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면 당신은 분명 망설일 것이다.” 9월 넷쨋주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의 관전 포인트는 신구 섹시 아이콘의 대결이다. <어브덕션>의 테일러 로트너냐,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냐. 둘의 나이 차이가 28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 흡혈귀로 출연했던 브래드 피트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뱀파이어를 쫓는 늑대소년으로 스타덤에 오른 테일러 로트너의 대결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가십들이 이런 빅매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리 없다. 실제로 신경전을 도발하려는 누군가는 브래드 피트와의 인터뷰 도중 테일러 로트너를 아느냐며, 그가 13살 때 출연했던 아동용 영화 <샤크보이와 라바걸의 모험>(2005)까지 언급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때문에 <샤크보이와 라바걸의 모험>을 10번 가까이 봤다는 브래드 피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들 중 테일러 로트너가 누구냐? 샤크보이? 사진 찍을 때 항상 셔츠를 열어젖히는 그 녀석이 샤크보이라고? 워우. 잘 모르겠다.” 브래드 피트의 말처럼 테일러 로트너는 아직 풋내기거나 애송이일지도 모른다. 비아냥 섞인 브래드 피트의 답변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아직은 대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이에 대해 테일러 로트너는 점잖게만 대꾸했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샤크보이와 라바걸의 모험>을 보기 위해 소파에 앉아 있는 것만 떠올려도 재미난 일이다.”

어쨌거나 테일러 로트너가 이제 브래드 피트와 견줄 만한 입지를 갖췄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지난해 <글래머> <피플> 등이 뽑은 섹시 스타 랭킹에서 명성 자자한 이들을 제치고 로버트 패틴슨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더불어 그의 몸값 역시 끝모르게 치솟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뉴 문>(2009)이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테일러 로트너의 에이트팩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사가 달라붙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쯤에서 한번 곱씹어보자. <트와일라잇>의 인디언 소년 제이콥은 볼품없고 왜소한 주변 인물에 불과했다. “단지 세 장면에 출연했던” 그는 벨라 스완(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주위를 빙빙 도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코흘리개를 연기했을 뿐이다. 실제로 당시 그는 아이스크림과 힙합과 미식축구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에 가까웠으며, 자신이 행운의 주사위를 거머쥔 줄조차 몰랐다. “원작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트와일라잇>의 오디션에 응했다가 덜컥 제이콥을 맡게 된 그는 개봉 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다리를 덜덜 떨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소개했다. 또한 그는 원작 소설을 들고서 제이콥을 연호하며 줄을 선 1천명의 팬들 앞에서 의기양양해하며 즐기지도 못했다. 대신 미처 서명을 해주지 못한 100명의 소녀들에 대한 미안함만 연신 털어놨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뉴 문>에서부터 허물을 벗고 탈태한다. <뉴 문>의 늑대소년은 주저하지 않는다. <이클립스>의 늑대소년은 뒷걸음질치지 않는다. 테일러 로트너는 뜨거운 심장으로 달려들어 마성에 가까운 욕망을 전시한다. 소녀들의 환호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가장 뜨거운 청춘 스타

“쟤는 셔츠도 없냐?” 틈만 나면 웃통을 드러내는 제이콥을 향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가 던진 힐난의 말을 기억하는가. 테일러 로트너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지닌 독특한 외모와 단단한 육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드에서 태어난 테일러 로트너는 비행사 아버지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 다니는 어머니를 가졌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인의 피가 흐르는 동시에 미국 원주민인 오타와, 포타와토미족의 후예이기도 하다. “난 기억을 못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기를 좋아했다고 하셨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유년 시절 습관이다. <어브덕션>에서 그가 맡은 네이슨처럼 그 또한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6살 때부터 가라테를 했고, 주니어 대회에서 챔피언 벨트를 여러 번 따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관심도 무술 수련에서 비롯됐다. 그에게 배우가 되라고 제안한 것도 그에게 가라테를 가르치던 스승이었다. 이후 테일러 로트너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 한달에 몇 차례씩 LA를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TV와 영화를 번갈아 가며 목소리 연기, 단역 등을 맡았던 그에게 <샤크보이와 라바걸의 모험>은 아동용 영화이긴 하지만 꽤 중요한 출발점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낙점된(정확히 말하면 테일러 로트너를 먼저 점찍은 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어린 아들이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이들의 영웅이 된다. “한번은 가게에 갔는데, 꼬마들이 엄마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엄마들이 내게 와서 ‘실례하지만, 샤크보이 맞느냐?’고 묻더라.”

아이들의 샤크보이, 소녀들의 늑대소년, 테일러 로트너의 항로는 순탄대로였고 별다른 굴곡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테일러 로트너는 항상 자신에게 축복 세례만 쏟아질 것이라고 낙관하진 않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어브덕션>은 휴식을 위한 쉼표라기보다 새 길을 모색하는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브덕션>의 현지 시사회가 끝난 뒤 테일러 로트너는 “이전에 복싱이나 모터사이클을 경험한 적이 없다. <어브덕션>은 내가 지닌 무술 연기와 운동신경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서 흥분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본> 시리즈를 기대하고 찾아든 관객을 위한 립서비스에 가깝다. <어브덕션>에서 테일러 로트너가 보여주려고 애쓰는 건 그가 지닌 것보다 그가 성취해야 할 것들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익힌 멋진 발차기 솜씨보다 진짜 아버지를 찾고 또 동시에 아버지가 되는 소년의 심리를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시도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합격점을 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어브덕션>은 나를 배우로서 더욱 연장시켰으며, 내가 이전에 했던 어떤 도전보다 더욱 감정적인 측면에서 나를 고취시켰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그가 <어브덕션>을 택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제이콥을 벗고 질주하라

<브레이킹 던 part1, 2>가 기다리고 있는 이상 테일러 로트너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이콥으로 불릴 것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제이콥이 성장했으니, <브레이킹 던>에서 테일러 로트너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에드워드-벨라-제이콥의 삼각관계는 에드워드와 벨라의 딸 르네즈미(메켄지 포이)의 등장으로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테일러 로트너가 그동안 보여줬던 울부짖는 야수가 아닌 또 다른 제이콥을 선보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테일러 로트너에 대한 팬들의 ‘각인’이 지속되려면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자장에서 벗어났을 때에도 테일러 로트너가 홀로 존재감을 발산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어브덕션>은 테일러 로트너에게 일종의 중요한 관문이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외에 그가 출연키로 한 <스트레치 암스트롱> <인카세론> 역시 마찬가지다. 테일러 로트너의 질주는 어쩌면 지금부터라고 말해야 적절할 것 같다.

사진제공 누리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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