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평범한 남자라는 ‘승부수’
2011-10-14
글 : 안현진 (LA 통신원)
<CSI: 과학수사대>의 테드 댄슨

<스파르타쿠스: 블러드 앤드 샌드>(이하 <스파르타쿠스>)의 배우 앤디 위트필드의 부고를 들었다. 영국 출신이며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기자로 데뷔한 위트필드는 <스파르타쿠스>가 시작할 때는 무명이나 다름없었지만 시즌1이 끝남과 동시에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시즌2 촬영을 시작할 즈음 암이 발병했고, 치료와 완치, 재발을 겪으며 스스로 <스파르타쿠스>에서 물러났다. 방송사쪽에서도 시즌2 촬영에 앞서 프리퀄 격인 <스파르타쿠스: 갓스 오브 디 아레나>를 제작하고 방영해 위트필드가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결국은 주연배우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고인이 된 위트필드를 계속 볼 수 없음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을 바꾸어가면서까지 이어갈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땐 TV 속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거울처럼 닮아 보인다. 우리 모두 사회에서,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란 없다.

<스파르타쿠스>가 캐릭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라 배우를 교체했다면 현대물에서의 캐릭터/배우는 좀더 쉽게 대체된다. 하지만 시즌이 오래될수록 시청자 입장에서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드라마 속의 중심 캐릭터가 퇴장하고 새 얼굴을 맞이할 때는 TV시리즈 자체에 대한 애정이 식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아마 <CSI: 과학수사대>의 길 그리섬 반장(윌리엄 피터슨)일 거다.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으로 이어진 스핀오프 TV시리즈의 대명사 <CSI: 과학수사대> 속 세 ‘반장님’들은 유난히 카리스마있고 매력적이다. 팬들의 애착도 큰 편이다.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은 ‘길 반장님’, 마이애미의 호라시오 케인은 ‘호 반장님’, 뉴욕의 맥 테일러는 ‘맥 반장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다. 그래서 길 그리섬이 새라(조자 폭스)와의 은밀한 관계를 베드신으로 폭로하고는 총총히 시리즈에서 퇴장했을 때, 나를 비롯한 팬들은 충격과 헛헛함을 동시에 느꼈으리라.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는데, 그 발에 또 도끼가 찍힌 기분이랄까. 길 반장은 떠났지만 CSI팀 입장에서나 드라마 입장에서나 빈자리를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 뒤 2인자였던 캐서린(마그 헬렌버그)이 반장으로 승진하고, 로렌스 피시번이 영입되어 자리를 채우는 듯싶었지만 숙적인 연쇄살인마와 사투를 끝내고는 시리즈를 떠났다. 그리고 지난 9월21일 방영된 시즌12에서는 공석을 채울 새 얼굴을 소개했다. 바로 <데미지스> 시즌1의 악역 아서 프로비셔를 연기했고, <보어 투 데스>에서 허허실실괴짜속물 편집장을 연기한 테드 댄슨이다. 댄슨은 캐서린이 강등된 자리에 부임한 D. B. 러셀 반장을 연기한다.

<CSI> 제작자인 캐롤 맨델슨의 말을 인용해, 테드 댄슨이 연기할 러셀을 살펴보자. “우리는 시리즈에 새로운 기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지금까지 평범한 캐릭터가 팀에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리섬도, 랭스턴도 아닌 가정과 직장 사이에 균형점을 찾은 사람을 떠올렸다.” 과학수사대인 만큼 괴짜 모범생다운 면모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새 반장의 등장을 두고 술렁거리는 팀원들에게 “아침, 내가 살게”라는 단체문자를 보내는 러셀 반장을 미리 만난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기 앞가림 잘하는 보스가 생긴 것 같아서 솔직히 반가웠다.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덜어줄지 모른다는 기대도 앞선다. 물론 그 누구라 해도 길 반장님의 빈자리를 만족스럽게 채울 리 없다. 아마 팀원들에게나 시청자에게나 마찬가지일 거다. 지난 시즌을 모두 챙겨보며 함께 나이 든 팬으로서, 그게 서운하면서도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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