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시네마의 전성기는 90년대에 시작해 90년대에 끝났다. 퀴어시네마의 팬들이라면 이 단호한 문장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0년대는 확실히 퀴어 시네마의 진정한 전성기였다. 선댄스영화제를 통해 토드 헤인즈, 그랙 애러키가 등장했고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는 어떤 영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대 이후 퀴어 시네마는 예전만큼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퀴어 시네마의 정신이 사라진 건 아니다. 퀴어 시네마의 가벼운 (야오이적) 특성은 주류 영화 속에서 하나의 상업적 코드로 활용되고 있으며, 서구의 퀴어 시네마 운동으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한 아시아의 젊은 감독들은 사회적, 문화적 편견을 딛고 각자의 퀴어 시네마 운동을 일구어가는 중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당도한 몇 편의 퀴어 영화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두 작품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랑스런 남자>와 <사이공의 실락원>이다. 두 영화는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이제 막 시작된 국가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텍스트들을 품고 있다.
인도네시아 감독 테디 소리앗마쟈의 <사랑스런 남자>는 트렌스젠더 아버지와 회교도 딸의 만남을 그린 영화다. 시골에서 자란 차하야는 4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자카르타로 간다. 문제는 그토록 만나고 싶던 아버지가 길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살아가는 트랜스젠더 매춘부라는 사실이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두 사람은 자카르타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서서히 오랜 사랑을 되찾아간다. <사랑스런 남자>는 일종의 정면 돌파다.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로 인한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은 인도네시아에서 트랜스젠더 아버지와 회교도 딸의 화해라는 소재는 꽤나 논쟁적이다. 테디 소리앗마쟈는 논쟁적인 소재를 약간의 신파를 곁들인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기운 속에서 온화한 가족영화로 풀어내는 재주를 선보인다.
베트남 감독 부 응옥 당의 <사이공의 실락원>은 <사랑스런 남자>와 비슷한 소재를 좀 더 가벼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다. 주인공인 게이 청년 코아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사이공으로 향하지만 첫날부터 사기꾼 게이 커플에게 모든 돈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코아는 돈을 훔쳐간 커플 중 한명인 람과 사랑에 빠져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람은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게이 매춘부다. <사이공의 실락원>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베트남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조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한국처럼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은 이웃 국가인 태국이나 필리핀과는 달리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력한 편이다. 부 응옥 당 감독은 논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소재에 말랑말랑한 야오이물의 분위기를 끼얹으며 살짝 우회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베트남 게이 커뮤니티의 특징은 곰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 단편인 손태겸 감독의 <야간비행>도 주목을 요한다. 올해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서 3등상을 수상한 <야간비행>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소년의 하룻밤을 다룬다. 소년은 몸을 판 중년의 남자에게 작은 애정을 느끼고, 어쩌면 남자 역시 마찬가지의 감정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손태겸 감독은 주인공 소년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우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밀한 연출로 잡아낸다. 이송희일, 김조광수 감독에 이어 당도한 한국 퀴어 시네마계의 재능이다. 다소 오래전 영화이긴 하지만 커밍아웃한 게이감독 욘판의 <미소년지련>도 챙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이 바에서 몸을 파는 고급 남창과 경찰의 얽히고설킨 사랑과 비극을 다룬 이 아시아 퀴어영화의 고전에는 90년대 홍콩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자기고백적인 연민과 신파의 뜨거움이 담겨있다. 바로 전해 개봉한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1997)의 영향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며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아시아 퀴어 영화들은 전혀 다른 문화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파는 게이 남자들’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왜 그들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게이 남창이라는 소재를 다룬 것일까. 혹시 지금 젊은 아시아 게이 감독들은 게이 남창이라는 존재가 사회적, 종교적 마이너리티들이 처한 현실을 비추는 가장 명료한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당신이 퀴어 시네마의 지지지라면 올해 부산영화제의 아시아 퀴어영화들은 흥미진진한 논쟁거리를 던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