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정적인 롱테이크가 만든 고뇌와 신비로움 <동학, 수운 최제우> The Passion of a Man Called Choe Che-u
2011-10-06
글 : 김효선 (영화평론가)

<동학, 수운 최제우> The Passion of a Man Called Choe Che-u
박영철 | 한국 |2011년 |106분 |뉴 커런츠

사극 <동학, 수운 최제우>는 적은 자본과 제한된 제작환경으로도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최제우가 하옥되는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동학을 창시한 뒤 관군에 붙들리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보여준다. 아내를 첫 제자로 삼고, 아들에게 천도를 가리키고, 제자와 함께 전국을 유랑하며 도를 설파하는 장면들과 노비 문서를 태우는 장면, 그리고 최시형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장면 등이 이어지면서, 선하고 올곧은 선비가 반역자로 몰아져 희생되기까지의 전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절제된 영화의 리듬과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 덕분에 영화는 관객을 감정적으로 선동하지 않으면서도 사건의 비극성을 전달한다. 특히 최제우와 상주목사 조영화 역의 연기를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대립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동학, 수운 최제우>는 정적이고 우직한 영화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표정과 철학적인 대사들을 천천히 오랫동안 담아내고, 이야기 자체의 진행 호흡도 느린 편이다. 그러나 영화는 매 장면마다 화면을 공들여서 구성하고, 다양한 카메라 각도와 불균질한 사운드를 통해서 인물이 느끼는 압박감과 고뇌를 성공적으로 드러낸다. 눈앞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간의 긴장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를 잘 구사하고 있어, 몇몇 장면에서는 미스테리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다. 최제우가 겪는 일들은 예수의 수난, 그리고 영화 <잔 다르크의 열정>과 관련한 모티프들을 연상시킨다.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만물을 낳는 이치와 같은 고답적인 대사가 이어지면서 인물에 대한 몰입이 힘들어질 때가 있다. 또한 영화의 진지함에 있어서 이완의 역할을 담당하는 대목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영화가 요하는 집중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감독의 묵묵한 여정에 동참하려는 분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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