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중국 감독들, 투쟁하는 정신 잃지 않기를
2011-10-07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열한송이 꽃>으로 부산 찾은 왕샤오슈아이 감독

왕샤오슈아이는 오랜만에 부산을 찾은 손님 중 하나다. 초기작 <머나먼 낙원>이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후, <북경자전거>(2001)는 전주영화제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중경 블루스>는 충무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지아장커, 장위엔 등과 중국 6세대 감독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왕샤오슈아이는 올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성장영화 <열한송이 꽃>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문화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흔들리는 민중의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열한송이 꽃>은 여전히 사회적 리얼리즘을 파고드는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부산을 방문했다.
=부산은 많이 와 본 적이 없지만 아시아 영화계에서의 영향력은 잘 안다. 특히 새로 만든 영화의 전당을 보고 있으면 한국 정부가 영화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것 같다. 중국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문화혁명이라는 소재를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요즘 중국에는 문화혁명을 다룬 영화, 혹은 리얼리즘 영화 자체가 많지 않다. 모두가 무협영화 등 투자가 잘 될 만한 영화만 만든다. 사실 문화혁명이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리얼리즘 영화는 여전히 검열의 문제를 안고 있어서 투자사들이 잘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검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시장적인 문제도 크다. 모두가 영화로 얻을 수익만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화혁명이라는 소재는 아예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겠다는 노선을 지키고 있다. 최소한 한두 명 정도는 이런 영화를 계속 만들어야한다.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기록이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열한송이 꽃>은 중국 개봉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라 검열이 심하진 않았다. 중국의 영화감독 기관인 광파전영전시총국과 상의를 하고 수정을 거쳐서 상영통과를 했고, 10월1일부터 7일간 계속되는 중국 황금 연휴기간 중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모두 세 편의 중국영화가 상영 중인데 하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공개되는 정소동의 <백사대전>, 다른 하나는 성룡의 대작 <신해혁명>이다. 사극은 검열에 전혀 걸리지 않는데다가 요즘 중국 관객들은 장이모우의 영화들에 익숙해져 대작 사극은 모두 걸작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내 영화처럼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려는 리얼리즘 영화는 잘 개봉하지 않는다. 중국 감독들은 투쟁하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가 실제 경험을 담고 있는 건가.
=아이들이 살인범을 목격하고 숨기는 부분은 실제 경험이 아니지만 살인범이 잡히는 건 어린 시절에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주인공 소년이 부모님과 그림도 배우고 체조도 하는 부분은 어린 시절 내 경험으로부터 따 온 것이다.

-소년은 어떻게 캐스팅한 건가. 감독님과 실제로 닮은 아이를 찾고 싶었을 것 같은데.
=연예기획사에서 보내준 많은 아역배우들로부터 뽑았다. 정말 많이 보내주는데...(웃음)...아이들을 모아서 같이 게임을 하게 했고, 그 모습을 보며 캐스팅했다. 주인공 아이는 리더십이 엿보이더라. 내 어릴 때 보단 좀 더 예쁘긴 하지만.(웃음)

-아이를 주인공으로 중국의 과거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북경 자전거>의 회고적인 속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열한송이 꽃>의 아이들은 문화혁명이 끝날 때까지도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전혀 모른다. 그런데 그 시절 성인들 역시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서 영화를 만들 경우에는 성인의 세계가 변화하는 지점을 더 돋보이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북경 자전거> 시절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에게,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변화가 너무 크다. 영화시장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어서 오히려 창조적인 작업의 수준들이 하락해가는 상황이다. 요즘 중국영화는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고, 상업성이 작품성을 대체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걱정이다. 나 같은 영화를 찍는 사람은 수익을 크게 얻기가 힘들다. 최선을 다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으나 투자, 배급, 관객의 호응을 얻기가 쉽지가 않다. 이런 상황은 정말로 위험한 악성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번 영화로 한 챕터를 닫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차기작은 어떤 영화가 될까.
=지금 중국은 포장만 근사하게 만들며 사기를 치는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무협사극 대작을 찍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뭘 만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웃음) 지금 중국은 모두가 포장에만 집착한다. 퀄리티는 상관없고 포장만 좋으면 된다고 여긴다. 대만이나 한국에 와보면 포장이 좋은 과자가 맛있다. 퀄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에 가면 포장이 예쁘면 더 수상하다. 믿음을 잃어버렸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