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상처받은 이들에게 바치는 영상시(詩)
2011-10-07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권효빈
<핑크> 전수일 감독

철거를 앞둔 바닷가 마을에 위치한 술집 ‘핑크’는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을 비추는 거울이다. 색이 바래 회색이 된 핑크의 간판이 이곳에 모여 고단함을 푸는 이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전수일 감독의 신작 <핑크>는 마을 철거반대 시위를 하는 옥련의 술집 핑크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떠도는 여자 수진이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람의 트라우마가 한 번의 계기로 속 시원하게 풀리는 게 영화적인 것이라면 한 단계씩 천천히 극복해내는 게 현실인 것 같다” 전수일 감독은 삶에 치이고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사람들의 내면을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관조하는 것이 <핑크> 그리고 그가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다.

<핑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실제 철거예정인 군산의 바닷가 마을에서 촬영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레 담게 됐다” 전수일 감독의 설명처럼 철거반대시위를 끊임없이 하지만 결국 그들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아는 영화 속 사람들의 체념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간 소외된 자들, 사라지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던 전수일 감독의 작품세계를 생각해보면 그의 여덟 번째 영화 <핑크> 역시 지극히 그다운 작품이다.

<핑크>는 고정된 숏으로 아름다운 바닷가와 허름한 술집을 맞물려 보여주는데, 전수일 감독이 택한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까지 보여준다. “인물의 정서와 공간의 접점을 가장 신경 썼다. 공간이 인물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다” 전수일 감독의 설명처럼, 술집 핑크와 옥련, 수진, 바닷가 마을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상처가 모여 복합적인 드라마가 되고 또 그 상처들은 차근히 풀어나가는 과정이 영상시(詩)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의 바람처럼 <핑크>는 상처받은 이들을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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