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만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도시가 또 있을까? 같은 냉전의 상징이었다고 해도 (심지어 현재형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판문점은 베를린과 비교하기 어렵다. 판문점은 협상을 위해 지어진 특수목적의 건물군이지만 베를린은 도시다. 그것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몇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런 도시가 둘로 나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헤어진 가족들. 친구들. 서로 다른 체제간의 경쟁과 긴장. 슈타지. 체크포인트 찰리. 케네디의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 독일 분단과 한반도의 분단이 겹쳐진 동백림사건. 도시처럼 허리가 두 동강난 건물들.
우여곡절 끝에 독일이 통일되고 338 대 320이라는 근소한 표차로 연방수도가 본이 아닌 베를린으로 확정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폭로되는 배신의 기록. 다시 나타난 땅 주인들. ‘동독박물관’으로 축소되어 사라진 동독인들의 삶. 세계적 관심을 끈 박물관 섬 확장사업. 버거킹과 코카콜라. 포츠담광장 재개발. 그리고 즐거운 에피소드인 신호등 남자(Ampelmann)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상징하는,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그 조각들을 서울 청계천을 비롯한 전세계에 기념물로 퍼트린, 그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굿바이 레닌>은 바로 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전후, 그러니까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내용이 급격히 변하던 바로 그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사라진 동독을 다시 만들어내야 하고, 심지어 통일이 동독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허구를 날조해야 했던 한 소년의 가족이 겪는 희비극이다.
앞으로 우리가 한반도에서 만들어갈 이야기에도 이렇게 비극 사이에 가끔 희극이 반짝일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문제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어쩌면 시선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굿바이 레닌>은 우리의 ‘데자뷰’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