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극 감독은 올해 부산에 영화 대신 비전을 가지고 왔다. 1980년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는 침체된 홍콩 영화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무기로 3D를 선택했다. 서극 감독은 현재 자신이 제작하고 이혜민 감독이 연출한 <신용문객잔>(1992)을 리메이크한 3D 영화 <용문비갑>의 후반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최초의 3D 무협영화가 될 <용문비갑>은 11월 중 영화 제작을 완료하고 12월20일경 중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서극 감독은 <용문비갑>과 관련해 7일 열린 3D 입체영화 제작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무협영화의 액션을 어떻게 3D로 구현하느냐는 것이다. 서극 감독은 무협영화를 3D로 제작하는 것이 기존의 2D영화에 비교했을 때 용이한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2D 영화에서는 액션 동작 등을 강조하고 공간감이나 입체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촬영과 편집이 필요했다. 반면 3D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적다.” 3D 기술 자체의 장점인 심도 깊은 입체감을 액션에 활용한다는 뜻이다.
무협의 3D화는 할리우드와의 분명한 변별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할리우드에서 제작되지 않은 3D영화를 말할 때 늘 따라다는 질문이 있다. 할리우드의 3D 기술력에 비해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는 질문이다. 서극 감독은 이 질문에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사실 3D 기술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기술이다. 할리우드와의 차이는 어떤 장비를 사용하느냐 정도의 문제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DC코믹스나 마블 같은) 만화 원작의 캐릭터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규모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할리우드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에 SF 또는 판타지를 다룬 3D 영화가 있다면 중국에는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있다. 이것은 서양과는 다른 아시아인만의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을 영화적인 기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할리우드에 비해 훨씬 풍부하다.”
아시아인만의 특색을 살린 3D를 구상하는 서극 감독은 3D 영화가 단순한 유행 같은 현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화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맞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다큐멘터리, 뉴스, 스포츠 등에서 3D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3D 기술은 우리의 일상과 더 가까워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명의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덧붙여 서극 감독은 아시아에서 저예산의 3D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질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바타> 이전에도 3D 영화는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저예산의 공포영화다. <아바타>의 성공 이후 3D 영화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지금 아시아에서 작은 예산이지만 3D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더 큰 규모의 3D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짧은 부산 방문길에 서극 감독은 홍콩영화의 재건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 전체에 대한 비전을 꺼내놓았다. 홍콩, 중국을 넘어 아시아의 3D 영화에 대한 가능성을 고민하는 그는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다운 아시아의 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