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목>은 도미노 게임을 연상시킨다. 필리핀의 파사이 로톤다 교차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조각조각 모여 그림이 완성됐을 때 폭발하는 식이다. 그러나 사건들이 특별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동생과 누이가 꽉 막힌 도로의 차 안에서 말다툼을 나누고, 아버지와 아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농구 시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빌려간 돈을 갚지 못해 쩔쩔매고 노점상 주인은 동네 양아치들과 내기당구에 골몰해있다. 사건들은 마닐라의 뜨겁고 습한 날씨와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리고 결국 한 남자에 의해 모든 것이 파국을 맞는다. “쉽게 흥분하고 짜증내는 도시에서 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로렌스 파자르도의 말처럼 <아목>은 한 날, 한 시, 한 공간에 엮여있다는 이유로 아무 상관없는 일에 휘말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일상적인 사건들이 제각각 의미하는 바는 크다. 로렌스 파자르도 감독은 남동생과 누이의 에피소드를 예로 든다. “그들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지만 서로에게 짜증만 내며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결국 사건이 일어난 뒤 동생은 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아목>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목>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거리의 아이들이 리듬을 만들며 랩을 하는 장면이다. 일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데 영화 중간중간 랩하는 장면을 넣어 활기를 불어넣었다. “랩은 그 아이들이 평소에 하고 노는 놀이다. 랩도 아이들이 만들어 온 거다.” 음악을 설명하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동네 양아치와 노점상 주인이 서로를 공격하는 장면에 삽입된 노래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젊고 재능 넘치는 로렌스 파자르도 감독의 차기작은 엇갈린 사랑의 실타래를 푸는 멜로영화다. 그동안 강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폭력적인 감독으로 낙인찍히는 게 싫어서란다. 하지만 그 다음은 꼭 호러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갑자기 괴물 흉내를 낸다. 이 감독, 참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