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역동성, 독창성, 탐나는도다
2011-10-10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포르투갈 6인의 감독전: 극한의 시네아스트들>로 탐미하는 포르투갈 영화세계

우리는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의 역사를 알고 있다. 아무도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던 일을 어느 포르투갈인의 모험 의지와 투지가 이룩해냈다.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한 도전, 이들에게 그 도전은 지리적 이탈임과 동시에 자신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했다. 포르투갈의 문호 사라마구는 소설 <미지의 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모든 남자는 섬이다. 그런데 섬을 보기 위해선 그 섬을 벗어나야 한다”라고. 이베리아 반도 서남단의 작은 국가 포르투갈은 그렇게 15, 16세기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 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21세기, 격감한 세계 속의 자국 인식이 이들에게 어떻게 새겨졌을 지가 궁금하다면 올해 부산영화제의 포르투갈 특별전을 찾아보길 권한다. 미지의 여섯 감독이 열다섯 편의 새로운 영화를 통해, 서로 다른 고민과 색채로 자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가족, 무의식, 드라큘라, 음악 등 다양한 이야기

현재 활동하는 인물 중 가장 연로한 감독이자, 포르투갈의 거장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Manoel De Oliveira)는 5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그의 관심사엔 항상 ‘가족’이란 키워드가 놓인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국내 최초로 상영되는 <과거와 현재>(1971) 역시 이 축에서 보아야 하는 영화다. 사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올리비에라의 필모그라피는 조금 어수선한 편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이후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데 성공하는데, 실은 그 배후에 조금 아이러니한 이유가 숨겨져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의 독재정권 시기였다. 71년까지 이어진 그의 엄격한 영화검열이 오히려 올리비에라의 스타일을 반듯하게 정제했다는 평이다. 물론 문화 콘텐츠는 누를수록 더 교묘히 자신을 발산한다. 당시 포르투갈의 문학계가 그랬고, 그러니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자연스레 ‘부르주아지를 향한 풍자’를 담는데 성공한다. ‘좌절된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 불리는 <불운의 사랑>(1979)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한편 올리비에라의 90년대 역작인 <아브라함 계곡>(1993)에는 여주인공 엠마가 소설 <보바리 부인>의 궤적과 겹치는 행동을 한다. 소설의 플롯을 중심으로 보아도 되지만, 이 영화는 특별히 미장센의 측면에서 감상하는 걸 권하고 싶다. 세속적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한 주인공이 ‘꽃, 과일, 나무, 산, 계곡’ 등 무생물과 자신을 병치시키는 화면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칸과 베니스 등 주요 영화제에서 일찍이 인정받은 주아옹 카니조(Joao Canijo)의 작품은 총 4편이다. 그의 영화를 언급하기 위해선 우선 ‘가족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올리비에라의 조감독 출신이기도 한 카니조는 결코 일상적 범주에서 이를 다루지 않는다. 일단 변형된 가족의 형태를 원류에 두고, 각 영화마다 그를 변주하는 식으로 주제에 접근한다. 앞서 올리비에라가 부르주아를 다룬 반면, 카니조가 사회하층민을 중심에 두는 것도 특이하다. 파리 외곽에 사는 포르투갈 이민자가 중심인 <생존>(2001), 2004년작으로 매춘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암흑의 밤>, 그리고 최근작 <혈육>(2011) 역시 리스본의 하류 계층이 주인공이다. 스타일의 측면에서도 카니조의 작품은 젊고 화려하단 특색이 있다. 주제 의식에서 아이러니의 측면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야기가 역설적이지 않은 대신 말미에 ‘쇼크’가 자리하는 게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그렇지만 카니조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인물의 자의식, 즉 계급적 주체의식이 진보적이란 데 있다. 도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공이지만, 그들은 하층민의 계급의식에 집중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독이 겨냥한 건 하위계층의 구원이 아니라 ‘현실의 스케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설계한 독특한 프레이밍, 세트 디자인, 사운드의 중첩은 영화를 더 풍성하고 세련되게 만든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 스타일까지 무한도전

만일 ‘포르투갈 특별전’에서 단 한 작품만 택해야 한다면 과감히 주아옹 페드로 로드리그쉬(Joao Pedro Rodrigues)를 선택하길 권한다. 난해한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인상적이다. 동성애가 스토리의 발단이 되는 그의 영화는 총 2편인데, 우선 데뷔작 <유령>(2000)은 거의 무성영화에 가까운 형태로 ‘성적 동반자를 찾는 한 남자의 방황’을 다룬다. 2009년작 <남자로 죽다>는 여장 취미를 가진 주인공 토니아가 생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심리적 공황을 그린 작품이다. 로드리그쉬의 특색은 유니크한 소재에도 있지만, 20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아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모더니스트’의 색깔로 보아도 된다. 다시 말해 무의식을 통한 자아의 발견,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도전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이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유령>에서 ‘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검은 수트’를 착용하는 것, <남자로 죽다>의 ‘여장’ 등은 새로운 인격체를 설정해 ‘자신 속의 또 다른 나’를 분리한다는 측면에서도 꽤 참신한 장치가 된다.

비슷한 의미에서 ‘망토’가 돋보이는 다른 작품이 있다. 에드가 페라(Edgar Pera)의 <남작>(2011)이 그렇다. 2차 대전 당시의 미국 B무비팀이 남긴 드라큘라 영화를 복원해 재촬영한 이 영화는 ‘디졸브와 다중스크린, 그리고 롱쇼트’로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이다. 특이한 앵글과 공간 배치가 인물 간 구도를 의도적으로 뭉개는데, 이가 오히려 몽환적 성격을 더한다. 페라의 다른 영화 <카를로스 파레데스에 대한 헌정>(2006) 또한 훌륭하다. 20세기 최고의 포르투갈 뮤지션으로 일컫는 ‘기타연주자 파레데스’에 대한 헌정 다큐멘터리물인 이 영화를 그는 아방가르드하고 경쾌하게 풀어냈다. 이 밖에 미겔 고미쉬(Miguel Gomes)의 <우리들의 사랑스런 8월>(2008)도 다큐멘터리적 특성을 띤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에 ‘영화 만들기’에 대한 서브스토리가 더해지는 이 작품은, 결국 극영화로 마무리되면서 보는 이에게 해석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8월이란 계절의 특성, 이를테면 ‘바캉스와 캠핑장, 야외 공연, 바이크의 경음기’ 등이 기록처럼 연결되다가 결국 완결된 극의 형태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주아옹 니콜라우(Joao Nicolau)의 작품을 언급해야 한다. <검과 장미>(2010)는 모더니즘의 끝자락에 나타날 법한 ‘다양한 실험의 장’으로써 ‘상징, 초현실, 미래주의’ 등 다양한 시도를 담는다. 초현실적 분위기에서 시작한 영화는 어느덧 기이하게도 ‘15세기의 어느 해적선’에 당도한다. 이쯤해서 과거 포르투갈의 화려한 기억이 중첩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행이 안긴 것은 ‘수면과 사랑, 예술과 과학, 문학과 음악’, 즉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허무를 느낀다. 결국 이 대목에서 관객은 대항해 시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포르투갈인의 정체성을 생각게 된다. 마침내 실패하고만 이카루스의 꿈, 허황되더라도 이는 지금의 포르투갈을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극단의 여섯 영화인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포르투갈 영화의 미래, 이는 그 꿈과 환상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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