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그 시대의 뜨거운 에너지를 불러오고 싶어
2011-10-10
글 : 이화정
사진 : 이동훈 (객원기자)
<마이 백 페이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교내밴드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도,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던 산들바람도 사라졌다. 소소하고 정감 있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세계’로 보기엔 너무 가혹한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시기. <마이 백 페이지>는 그 시절을 통과한 이상주의자 저널리스트 사와다(쓰마부키 사토시)와 과격한 운동권의 리더 우메야마(마쓰야마 겐이치)의 이야기다. 1971년 일본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영화는 전공투 시대를 재구성한다. 동경과 회한의 교차 속, 여전히 야마시타 감독의 촉수는 성장하는 ‘청춘’에 도달해 있다. 달라진 이야기와 스타일, 규모로 인해 마치 자신을 ‘리셋’하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마이 백 페이지>, 쉽지 않았던 그간의 연출과정을 들어본다.

-오랜만의 장편이다. 전공투 세대의 이야기라니, 당신 작품이 아닌 줄 알겠다.
=영화 속 쓰마부키 사토시가 맡은 사와다의 실제 모델 가와모토 사브로가 지금은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내 작품을 평론한 적도 있었고, 인연이 있었다. 마침 프로듀서가 그 분의 이야기를 영화화 해보자고 제안했다.(가와모토 사브로의 경험담은 논픽션 <마이 백 페이지 어느 60년대 이야기>로 일본에서 출간되어 있다.) 1960년대 후반을 다룬 전공투 시대의 이야기지만 요즘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인 ‘마이 백 페이지’라는 음악이 주는 흥미도 컸고.

-그러게. 영화 제목이 밥 딜런의 노래다. 젊은 시절의 혈기에 대한 회한이란 내용이 영화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앞서 발표한 중편 <참 작은 세상>도 밴드 ‘더 피치’의 음악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당신작품에 음악이 끼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마 <린다 린다 린다>에서부터 함께 해 온 프로듀서 네기시씨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나 역시 음악에 많이 영향을 받지만,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면 신기하게도 음악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아진다.

-전작 <린다 린다 린다>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처럼 소소한 일상을 향유하는 청춘들과 달리 시대에 좌지우지되는 청춘에 주목한다.
=일상을 배경으로 하는 전작들과 전혀 다른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마이 백 페이지>의 테마는 ‘시대’ 그 자체다. 전공투 세대를 보냈던 젊은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들을 만나고 자료를 조사하는데 엄청난 공을 들였다. 기획부터 따지자면 3년이나 걸린 작품이다. 그동안 그 시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청춘들의 짐을 내가 지고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로 지방소도시 마을이었던 전작의 배경과 달리 도쿄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큰 변화다. 특히 1960년대~70년대 도쿄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의 도쿄의 젊은이에게서 찾기 힘든 열의를 영화를 통해 찾고자 한 건 아닌가.
=당시 도쿄는 고도의 성장시기였다. 굉장히 복잡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시기인데도 나는 그 시대를 동경한다. 그들의 선택이 어떤 부분 틀리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땐 지금은 찾기 힘든 에너지가 충만했던 시기였다. 사회파영화를 통해서 그때의 분위기를 불러오고 싶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공투 세대의 끝물을 보낸다. 투쟁의 한가운데의 에너지보단 쓸쓸한 정서가 더 짙게 배어있다.
=사와다 같은 경우 신문기자라는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던 사람이었다. 우메야마는 뭔가 하려고 했는데 이미 끝나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둘 다 학생운동 세대의 중심인물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그들이 가진 쓸쓸함 그 정서가 내겐 무척 흥미로웠다.

-시대극이다 보니 작품의 스케일 역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전작들에 비해 상업성을 가진 대중영화로서는 더 형태를 갖춘 느낌이다.
=이야기가 달라지니 스케일도 달라지고 연출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촬영과 편집 모든 과정이 그래서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무척 피곤하다는 걸 느끼겠더라. 이 작품을 하면서 지금까지 작품 할 때 쓰던 뇌 대신 다른 쪽 뇌를 쓴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청춘의 회한을 통해, 당신 작품 속 인물들은 이제 조금 성장한 건가? 차기작이 궁금하다.
=젊은 남자 이야기를 준비 중인데 언제 완성될지 모르겠다. 이번 작품이 내겐 커다란 벽 같았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찍은 탓에, 마치 기존의 나를 모두 리셋한 채 찍은 데뷔작 같단 기분이 든다. 고갈된 체력과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 당분간은 <마이 백 페이지> 이전의 스타일로 돌아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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