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웨스턴=미국 장르' NO! 상상과 판타지의 공간으로
2011-10-11
글 : 조영정 (한국 영화사 연구가)
<황야의 독수리>부터 <양자탄비>까지, 아시아는 왜 웨스턴에 매료되나
<양자탄비>

서부영화는 다양하다. 어쩌면 너무도 견고한 틀 속에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다양해 보이는지 모른다. 서부영화의 이야기는 분명 단순하다. 한 남자가 마을에 들어온다. 마을은 혼란에 빠져있다. 대부분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당들 때문이다. 남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처해 보려 하지만 결국 총을 뽑게 된다. 그리고 석양을 등지고 마을을 떠난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는 어떤 배우가 주연을 맡는가부터 시작하여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총을 쓰고, 어떤 악당과 대결을 벌이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한다.

무성영화 시절부터 서부영화에 매진해 온 미국의 영화들이 서부영화의 변주에 아이디어가 고갈 될 무렵 등장한 것이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정의로움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황금과 복수를 쫓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 스파게티 웨스턴은 다소 고리타분하고 따분해 보이던 서부영화에 “쿨”함을 가미하며 현대적인 인물극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기본구조는 여전하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만 놓고 보면 아시아에서 왜 서부영화에 매료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시아에는 이미 서부영화와 유사한 고유 장르들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나 중국의 무협영화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런 아시아의 전통적인 장르들이 서부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아시아의 영웅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이 떠돌이라는 점이다. 즉, 권력이나 힘을 앞세운 악당이 평화로운 마을에 침입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만난 주인공이 영웅으로 떠오르는 구조를 지녔다는 것이다. ‘난세의 영웅’이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화염>
<화염>

외세 침략이란 역사적 경험이 신화 불러내

서부영화를 받아들인 대부분의 아시아 웨스턴들은 대체로 외세의 침략을 받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외세에 무너진 이 경험이야말로 홀연히 나타난 구원자에 대한 신화적 관심을 갖게 한 이유일는지 모른다. 동시에 조용히 마을을 지키던 주인공들이 마을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고, 결국 ‘떠돌이 영웅’으로 변모된 이유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시아 웨스턴이 영향을 받은 서부영화는 1950년대 이후 미국영화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만주웨스턴이라 불리는 한국 웨스턴은 대표적이다. 나라를 잃고 만주의 벌판을 떠도는 주인공들은 때로는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지만 대부분은 돈과 복수를 위해 말을 달린다. 임권택 감독의 <황야의 독수리>는 가족을 몰살한 일본군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20년의 세월을 떠돌아다니는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이 점은 인도의 커리 웨스턴의 대표작인 <화염>도 마찬가지이다.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부패한 경찰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범죄자들이 영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을 끌어들인 장본인이 과거 이들을 체로했던 법을 집행하는 관리라는 점이다. 더 이상 악당에 맞서 싸울 힘을 잃은 관리는 비루와 제이라는 떠돌이들을 마을로 불러들여 개인적인 복수와 마을의 평화를 구현한다.

일본의 ‘철새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형사였던 주인공 타키는 이제 기타 하나를 등에 메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싸움실력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악당들과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알수 없지만 그는 더이상 법의 수호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몸속에는 여전히 정의로움의 피가 흐르는 것은 분명하다. <기타를 멘 철새>와 <대초원의 철새>에서 그는 개발을 명분으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야쿠자들을 상대로 맨주먹과 총 한자루로 맞선다. 황량한 광야에서 도시의 뒷골목을 오가며 도시 웨스턴이라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필리핀 웨스턴은 너무도 미국적인 웨스턴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독특한 아시아 웨스턴으로 자리매김한다. 페르난도 포 주니어라는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를 내세운 이 서부영화들은 아시아적인 어떤 요소를 담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서부영화의 이야기 구조와 인물구조를 그대로 차용하여 필리핀 서부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보는 즐거움이 남다른 것도 사실이다. 전형적인 ‘스타 중심’의 영화이기에 매력적인 주인공과 극적이면서도 행복한 결말이 보장된다. (페르난도 포 주니어의 영화에서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 끝나는 영화는 단 한편 있었고, 관객의 항의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황야의 독수리>

웨스턴에 대한 현대적 해석 <양자탄비>

그러나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새로운 아시아 웨스턴의 세계를 연 것은 중국의 <양자탄비>가 아닐까 한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도 하겠지만 <양자탄비>는 어느 아시아 웨스턴보다도 웨스턴에 대한 의식적인 현대적인 해석이 첨가되어 있다.

<양자탄비>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군벌의 시대 1920년, 중국 남부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한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광야. 철길을 따라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울린다. 잠시 후 12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검은 열차가 나타난다. 영화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 구조로 얽혀있다. 이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게끔 이중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마적 두목 장곰보는 현감 행세를 하고, 나중에는 그가 진짜 장곰보인지도 확실치 않다. 장곰보가 맞서는 마을의 권력가인 황대인은 대역을 쓰고 있으며, 진짜 현감은 장곰보의 책사 노릇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영화가 시작할 때 12마리의 백마가 끄는 열차가 등장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과연 그것은 마차인가, 열차인가!

<패튼 대전차 군단>(프랭크린 J. 샤프너, 1970)의 유명한 패튼 장군의 연설 장면을 차용하고, 스파게티 웨스턴과 샘 페킨파의 전쟁에 가까운 총격전을 가져오면서, 영화는 중국, 혹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각종 미국 액션을 한 편에 몰아넣는다. 글자 그대로 중국의 역사적 한 지점과 서부영화라는 장르적 판타지가 만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기타를 멘 철새>

10월9일 오후 1시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룸에서는 “아시아웨스턴: 동부의 사나이들”에 대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아시아 각국에서 만들어진 웨스턴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논의되었다. 세미나의 끝에 재미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아시아 웨스턴이 미국 서부영화나 스파게티 웨스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서부영화, 웨스턴은 특정한 미국 장르라기보다는 모든 국가들이 공유하는 ‘판타지’라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웨스턴은 신화화되고 기원을 알 수 없는 ‘판타지’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니겠는가 반문하였다.

어떤 방식으로 웨스턴이 아시아에 자라잡았는지 정확한 지점과 이유를 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웨스턴이 아시아가 공유하는 탈출의 판타지이며 상상의 공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영화제가 며칠 남지 않았다.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환상의 공간으로 어서 가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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