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는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만의 무기일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과감히 3D를 시도한 두 편의 한국영화를 소개했다. 신인 박홍민 감독이 연출한 <물고기>와 연극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추상록의 <감>이다. 이들은 모두 ‘3D는 블록버스터’라는 공식을 비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 작품들이다.
‘그런데 왜 3D로 만들어야 하는가.’ 두 감독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물고기>는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 나선 교수의 이야기다. 수소문 끝에 그는 신 내림을 받은 아내가 진도에서 무당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속신앙이 소재인 만큼 영화는 이승과 저승, 육지의 사람과 바다 속의 영혼을 대비시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박홍민 감독은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3D를 실제적 공간을 확장시키는 효과로 본 게 아니라, 현실을 왜곡시키고 과장시키는 요소로 끌어들이려 했다”고 말했다. 추상록 감독의 <감>은 아예 처음부터 3D에 맞는 장르와 내러티브를 고민한 경우다. 영화의 무대는 어느 시골마을의 공중화장실이다. 지방대 물리학과 강사, 보험외판원, 건달, 공양보살, 노숙자 등 6명의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갇혀버린다. 왜 하필 우리가 이 시간에 여기에 갇혀있는가를 놓고 대화하던 사람들은 과거 마을에 살았던 한 소녀의 원한을 떠올린다. “공포라는 장르를 놓고 3D가 잘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공중화장실은 협소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깊이감을 줄 수도 있고, 다양한 레이어를 배치해 입체감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D를 규모로 대하지 말라
<물고기>의 제작비는 7천만원, <감>은 3억5천만원이다.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예산의 규모가 다르기도 했지만, 이 또한 3D에 대한 영화의 목적에 부합된 결과다. <물고기>는 “3D영화에서 금기인 시도들을 거의 다 했다.”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는 바다의 풍경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배 위에서 촬영한 장면도 많았고, 카메라를 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로덕션의 기동성이 중요했던 만큼, 박홍민 감독은 대부분의 3D영화에서 주로 쓰이는 리그 방식(2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이 아닌 One-body 카메라(1대의 카메라에 2개의 렌즈)를 선택했다. “3D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쓰지 말라고 소문난 카메라였다. 하지만 <물고기>처럼 실험적인 구도나 컷이 많은 영화에서는 현장에서 빨리 적용할 수 있는 카메라여야만 했다. 리그 방식에 비해 적은 수의 스텝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였다.”
추상록 감독도 처음에는 제작 여건상 One-body 카메라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의 목적과 이야기가 3D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계획된 만큼, 3D의 완성도를 위해 감독은 결국 리그 방식의 카메라를 선택했다. “카메라를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만큼 입체감과 깊이감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모든 장면을 의미 있는 숏으로 만들기 위해 인물들의 손과 어깨, 화장실의 소품을 이용하는 등의 연출을 시도했다.” <감>에서 3D가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장면은 굳게 닫혀있던 화장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제작비 상승효과가 크긴 했지만,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장면이다.
다른 목적으로 3D를 활용한 두 감독은 3D영화의 개념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보였다. 박홍민 감독은 “3D는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영화의 기호와 3D가 얼마나 부합하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3D에 대해 미디어가 과대평가한 점이 있다. 아직까지는 신기할 뿐인지 모르지만, 결국 3D영화도 콘텐츠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추상록 감독의 이야기도 사실상 같은 뜻이다. 이들은 저예산으로 3D영화를 시도하는 것 또한 무모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감당할 게 많고 공부할 게 많지만, 공부하고 감당한다면 안 되는 건 아니다.”(박홍민) “3D를 규모로 대하지 말고 그에 맞는 명확한 컨셉을 잡으면 된다. 또한 3D제작시스템도 앞으로 더 경량화 될 것이다.”(추상록) 3D 블록버스터들과는 아예 비교를 거부하는 새로운 3D영화들이 태동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