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판 감독이 그의 오랜 친구 장국영과 부산을 찾았다. 생전 장국영의 모습을 욘판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영화의 전당에 기증한 것이다. 사진을 전달하는 것으로 훈훈하게 첫 시작을 연 욘판의 마스터클래스에선 삶이 곧 영화고 영화가 곧 삶이었던 욘판의 일대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의 영화와 삶을 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제 영화에 저의 삶의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항상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감독이 영화에 심어놓은 감정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거든요. 스타들과도 그 감정들을 나눌 수 있고요. 옆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겠네요.
저는 아주 어릴 때 영화에 매혹되었습니다. 10살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제가 10살 때, 그러니까 50년대부터 저는 영화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때는 대만에 살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경제가 계속해서 안 좋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별다른 장난감이나 게임으로 즐길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상상력이 곧 장난감이었는데, 상상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영화였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70년대엔 사진작가로 활동했습니다. 영화잡지에서도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1년 정도를 오클라호마 대학교에서 보내면서 제 오랜 꿈인 영화감독에 계속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2년째 되던 해 할리우드로 가서 엑스트라 배우로 활동했어요. 그래서 배우로서 처음 영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래 오래있지 않았어요. 할리우드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거든요. 그 이후 영국이나 전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그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홍콩에는 70년대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저는 홍콩에 프랑스영화를 배급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영화를 배급하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이 충분치 않았어요. 돈을 벌어야했죠. 물질적인 것 외의 어려움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충분한 돈을 모으고 주변의 도움도 받아서 제 첫 영화 <소녀일기>를 만들었습니다.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얘기지만 홍콩 주류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2번째 영화를 만들었어요. 장만옥, 주윤발과 함께 한 <로즈>였죠. 1985년에 이 영화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신동거시대>를 통해서는 조금 독특한 가족영화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네요. 실비아 장과 장만옥이 출연했고 제 영화 중 홍콩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요.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제 최고의 영화는 <도색>입니다. 굉장히 화려한 색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관객의 취향도 무시했고 플롯도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도색>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도색>이 개봉하고 난 뒤 일부 관객들이 말도 안 되는 영화라 <도색>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요. 여려 해 동안 이미지를 잘 쌓아놓고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도색>이야 말로 저의 예술과 영화 기술이 잘 표현된 영화 입니다. <도색> 이후는 제 어린 시절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내 친구 짜우치에가 겪었던 실화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대만에서 발생한 테러의 희생자죠. 이 영화는 동화 같으면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영화예요.
내년 1월에 저는 저의 회고록을 책으로 발간합니다. 책 제목은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이에요. 7월에는 유럽과 홍콩에서 제가 쓴 영화 제작에 대한 책이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내 영화이고 내 삶이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