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건축과 인간의 관계 맺기
2011-10-19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비트윈(Between)을 테마로 한 제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폭풍우가 치는 밤이다. 바깥은 어둡고 바람이 몹시 불어, 소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날 밤 아이는 침대에 누워서 ‘사람과 동물, 지구, 탄생과 사후’ 등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을 낳고, 얽힌 생각들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비트윈 숏 앤 숏’에 초대된 단편애니메이션 <폭풍의 밤>의 내용이다. 제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테마는 ‘비트윈’(Between)이다. 이 짧은 애니메이션에 담긴 내용처럼 올해의 영화제는 건축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침투해 그들과 맺고 있는 역학적 관계를 조망한다.

개막작은 차드 프리드리히의 신작 <프루이트 아이고>(2011)다. 세계무역센터의 건축으로 유명한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한 모더니즘 양식의 대단지 아파트 ‘프루이트 아이고’를 다룬다. 50년대 중반에 이 아파트가 처음 완성됐을 때, 미국건축가협회는 건축상을 줬고 매스컴은 ‘모더니즘의 정상’이란 수식을 댔다. 한때 가난한 사람들의 펜트하우스였던 이 건물은, 하지만 20년 뒤 범죄와 마약거래 지역으로 퇴락하고 만다. 왜일까? 영화는 모더니즘의 화두로 다루어지는 이 사건을 역사적 사료와 증언으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른바 이론과 실제의 괴리, 사회와 인간의 격차, 그리고 아름다움과 실용 간의 딜레마.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 중엔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1995)도 포함되는데, 비슷한 배경이지만 전혀 다른 화법의 이 두 작품을 비교하며 살펴도 좋을 것 같다.

개막작 <프루이트 아이고>

개막작에 기대어 한편을 더 언급한다. 처음에는 초호화 코스모폴리탄 아파트였지만 시대가 지나며 쇠퇴해간 건축물에 관한 영화 <빌딩 173>(2009)이다. 제목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상하이 소재의 아파트가 배경인데, <프루이트 아이고>가 건축을 통해 역사 속의 인간을 조망했다면 이 영화는 건물에 얽힌 개인의 에피소드를 얽으며 역사를 조립해간다. 같은 다큐멘터리지만 질감이나 형식 면에서 무척 다른 매력을 지닌다. 프로그램상으로 <빌딩 173>은 로렌조 폰다의 <메구니카>(2008)와 함께 묶여 상영되는데, 둘 다 애니메이션을 가미한 다큐물이며 50분 남짓의 작품이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소재를 보는 시점은 다르다. 멕시코(ME)와 과테말라(GU), 니카라과(NI)와 코스타리카(C), 아르헨티나(A)를 여행하는 그래피티 예술가의 여정을 따르는 작품 <메구니카>는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을 따라 이동하는 ‘인간’을 바라본다. 환경을 소화해내는 개인, 인간과 만난 건축의 변화를 살피는 과정이 흥미롭다.

10월20일부터 24일까지의 짧은 일정이지만 올해의 프로그램은 소규모 영화제 특유의 색채와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영화제의 컨셉을 고스란히 담은 ‘비트윈 숏 앤 숏’ 섹션은 버스터 키튼이 만든 집을 소재로 한 단편 <일주일>(1920)과 <일렉트릭 하우스>(1922)를 포함하며, <100명의 여성 건축사: 라이트 스튜디오>(2009)는 아시아 최초로 상영된다. 폐막작 <인사이드 피아노>(2011)는 정보가 부족했던 렌조 피아노의 건축 세계를 가까이서 확인할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이외에 다양한 포럼과 GV가 준비된 이번 행사는 이화여대 ECC에서 열린다. 상영 일정은 cafe.naver.com/si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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