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마흔살은 넘어 보이는 고등학교 물리 선생이 MMA 토너먼트 대회에 출전해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자신을 극도로 증오하는 동생과 사각의 링에서 만난다. <워리어>는 별다른 정서적 오프닝 없이 아버지와 아들이 10여년 만에 만나는 첫 장면처럼 정통적인 스포츠 드라마다. 형제애라는 테마에 감정이입하더라도 이처럼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생생한 현실감을 갖는 이유는 놀라울 정도의 리얼리티 때문이다. 실제 MMA 출신 그래그 잭슨 무술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만들어낸 여러 시합장면들은 단순한 박진감 이상이다. 훈련으로 얻어낸 결과라는 걸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진한 땀과 열기로 뒤범벅돼 있다.
10여년 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패디 콘론(닉 놀테)은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났고, 형 브렌든 콘론(조엘 에저튼) 역시 자신의 행복을 좇아 결혼하기 위해 떠났다. 홀로 남겨진 토미 콘론(톰 하디)은 힘든 시간을 보낸 뒤 군인이 되어 이라크로 떠났다. 돌아온 토미는 차례로 아버지와 형을 만난다. 쓸쓸히 살아가는 아버지는 술을 끊었고 형은 고등학교 선생임에도 딸의 병원비 때문에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토미는 500만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이 걸린 사상 최대 MMA 챔피언십 리그 ‘스파르타 대회’에 도전한다. 밤에는 클럽에서 용돈벌이 파이트 시합을 하던 형 역시 이에 도전한다.
<인셉션>의 ‘임스’ 역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톰 하디의 카리스마는 상당하다. 언제나 말없이 링에 올라 상대를 박살내는 한편으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떨치지 못하는 그의 울분은 <워리어>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멍든 얼굴의 선생과 파이터로서 묘한 이중생활을 하는 조엘 에저튼 역시 그에 못지않다. 여기서 끝이라면 <워리어>의 무게감은 절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로서 가정을 파탄내고 한참 세월이 흘러 자기와는 말도 섞지 않는 작은아들의 코치로 지내는 아버지 닉 놀테의 고단한 표정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얼굴이다. 무기력한 노인의 얼굴에 가끔 예전과 같은 악마적 표정을 심어놓는 그는 그야말로 ‘왕의 귀환’이다.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지나치게 미국적이긴 했지만 아이스하키 영화 <미라클>(2004)로 주목받았던 게빈 오코너 감독이 이들을 한데 엮는 방식도 좋다. 물론 이번 영화에도 이라크전과 미 해병으로 인한 애국적 설정을 심어놓긴 했다. 하지만 이런 부모, 형제간의 화해의 드라마는 지극히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억지로 한 공간에 몰아넣어 얼싸안고 우는 식의 억지감동 없이 그야말로 뜨겁고 ‘쿨’하고 철저하게 대회의 ‘시합’과 결부시킨다. 모든 의미있는 대화는 체육관 혹은 링 위에서 주고받는다. <워리어>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 모든 것이 사각의 링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