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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다
2011-11-11
글 : 최지은 (웹매거진 아이즈 기자)
MBC 다큐멘터리 <웃으면 복이 와요>부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까지

얼마 전 밤 늦은 시간에 채널을 돌리다 초현실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2002년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고 이주일의 공연 포스터가 광화문 광장과 덕수궁 돌담길을 뒤덮었다. 선술집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바라보며 “(이주일은) 대한민국 최고 바보요. 거기에 인기가 있는 거요”라 읊조리던 노인의 얼굴에서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나왔다.

하지만 MBC 다큐멘터리 <웃으면 복이 와요>는 이주일과 또 한명의 코미디언 고 김형곤을 그리워하되 그 시절을 추억하지는 않았다. 전두환과 은근히 닮은 이주일이 “혐오감을 주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당했던 코미디 같은 시대, 그의 유행어이자 히트곡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가 흐르는 위로 72만명의 서민이 강제퇴거당하던 5공 정권의 야만이 되새겨졌다. “큰 도적 노태우 구속하는 날 냉면과 소주 무료 제공합니다”라는, 울분과 유머가 뒤섞인 식당 벽보가 나붙던 90년대에는 김형곤이 있었다. “저희 전투포졸이 도둑놈은 못 잡아도 시위대는 잡아야 합니다”라는, 예나 지금이나 촌철살인으로 적용 가능한 멘트를 던지던 그는 당시 연기한 ‘영상 대감’이 ‘영삼’으로 들린다 해서 코너를 잃었다. 시사 풍자 코미디 때문에 정보기관까지 끌려 다녔던 김형곤은 훗날 회상했다. “선거 때마다 ‘보통 사람’을 자처하면서도 자신을 풍자하는 코미디언을 용납한 대통령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요즘 KBS <개그 콘서트>를 보며 몇몇 코미디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러한 전례 때문일 것이다. 공직자들의 복지부동과 관료주의의 경직성을 비꼬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원효는 고등학교에 독가스가 살포되기 직전의 비상시에도 핑계로 바쁘다. 경찰청에선 방독면이 비상물품이니 국방부로, 국방부에서는 구호물품이니 보건복지부로, 보건복지부에서는 학생용이니 교육부로 돌리다 보면 누군가가 “성금 걷자”고 할 거라는 절묘한 대사 위로 쓴웃음과 함께 <도가니>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장과 교직원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어른들은 묻는다. “그게 왜 교육청 소관인가요? 시청 소관이죠.”

“국회의원이 되는 법, 아주 쉬워요”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로 “판사가 된 다음 집권여당의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돼요”라는 명답을 내놓은 ‘사마귀 유치원’ 최효종의 대사들은 신랄하다 못해 통렬하다. “편의점 시급 4320원으로 10시간씩 숨만 쉬고 일만 하면서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데… (중략) 30년 동안 근면성실하게 사건사고 없이 일하면 오십이 넘어서 부장이 돼요. 그때! 회장님 아들 서른살이 상무로 와요. 그분께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며 비위를 맞춘다면 명예퇴직의 칼날을 피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 수많은 20대들의 염원인 대기업 입사에 대해 이토록 명료하게 분석한 이가 또 있을까.

날이 갈수록 밤길 조심하고, 차 조심하길 걱정하게 되는 이들은 또 있다. 인터넷 방송 <딴지 라디오-김어준의 나는 꼼수다>(이하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는 네명의 아저씨들이다. 해킹당한 언론사 총수, 전직 방송사 PD, 전직 국회의원, 고소당하기 일쑤인 탐사전문기자가 모여 온갖 육두문자와 자기 자랑 속에 이명박 대통령 ‘가카’ 및 측근들의 비리 의혹과 정치 현안을 빵빵 터뜨리는 <나는 꼼수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란하면서도 재밌는 방송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과 생각해야 할 것들, 행동해야 할 것들은 뉴스가 아니라 코미디 사이로 흘러가는 요즘,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문장을 종종 떠올린다. 작지만 날카로운, 그리고 즐거운 무기가 우리에게 남아 있음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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