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미드의 역습 (4)
2011-11-10
글 : 안현진 (LA 통신원)
2011 가을 시즌 신작 미국 드라마 8편
<팬 앰>

비행기는 미션을 싣고: <팬 앰> Pan Am

출연 크리스티나 리치, 마곳 로비, 켈리 가너, 카린 바네사 / 채널 <ABC>
여객기 ‘보잉 707’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제트기 시대는 해외여행의 보급, 여성의 취업률 증가 등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고가의 항공여행은 소수의 특권층과 부유층에만 허락됐을 뿐, 일반인에게는 로망이고 판타지였다. <ABC>의 새 TV시리즈 <팬 앰>은 ‘팬아메리칸월드에어웨이즈’(Pan American World Airways)의 승무원 4명을 중심에 두고, 비행기 여행이 “꿈”이었던 그 시절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1960년대 팬앰의 승무원이었고, <팬 앰>의 제작자이자 컨설턴트인 낸시 개니스는 승무원들을 두고 “시대를 앞서 세상을 탐험했던 여자들”이라고 일컬었다. 어깨가 유난히 강조되어 허리가 가늘어 보이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4명은, 보헤미안 매기(크리스티나 리치), 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로라(마곳 로비)와 로라의 독립적인 언니 케이트(켈리 가너), 그리고 프랑스 출신의 콜레트(카린 바네사)다. 이국적인 도시에서의 하룻밤, 대사관에서의 파티, 파일럿과의 로맨스 등 네 여자의 여정에는 확실히 낭만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하지만 에피소드 5편이 방영된 지금으로서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만든 케이트의 모험이 우세해 보인다. “외국 출입이 자유로운 승무원이야말로 요원에 적임자”라는 부추김에 케이트는 CIA 요원이 되어 자잘한 미션을 수행하는데, 그 과정이 꽤 흥미진진해 케네디 대통령과 직접 만나려던 매기의 모험이나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로라의 모험, 베를린에서 독일 대사에게 한방 먹이는 콜레트의 모험은 시시해 보일 정도.

실제로 기내에서 흡연이 가능했던 시대상을 “안방극장 흡연금지”라는 <ABC>의 규칙이 가로막았다는 점을 빼면, 노스탤지어로 가득한 <팬 앰>의 여정은 흥미진진하면서도 그윽하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저주받은 집으로 놀러오세요: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American Horror Story

출연 딜런 맥더못, 코니 브리튼, 데니스 오헤어, 제시카 랭 / 채널 <FX 네트웍스>
<글리>를 만든 라이언 머피의 새 TV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사온 하몬 부부와 딸 바이올렛, 그리고 그들의 저주받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하몬 가족은 남편 벤(딜런 맥더못)의 외도가 밝혀진 뒤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 새 출발을 꿈꾸지만 부인 비비안(코니 브리튼)은 앙금이 남은 상태다. 냉랭한 부부 사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살인의 집”이라고 불리는, 심지어 관광용 버스 투어까지 도는 이 집의 정체를 가족이 몰랐다는 것. 에피소드는 매회 그 집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끔찍한 살인(들)이 현실에서 거주자에게 어떤 기괴한 작용을 하는지를 병치해 보여준다. 과거의 사건이 전설, 괴담에 가깝게 그려진다면 현실의 범죄는 엽기적이라는 점이 공포를 상승시키지만 어쩐지 이토 준지의 공포물을 보는 듯한 허무한 느낌이 있어 ‘썩소’를 짓게 한다.

피로 얼룩진 “살인의 집”에 음산한 분위기를 더하는 사람들은 이웃의 콘스탄스(제시카 랭)와 콘스탄스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딸 애디, 섹시한 가정부 모이라, 상담치료사인 벤의 환자이면서 바이올렛에 대한 성적 흠모를 뻔뻔하게 실토하는 10대 소년 테이트, 그리고 하몬 가족이 이사오기 전에 그 집에서 일어났던 3중 살인사건의 범인 래리(데이비드 오헤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거나 나타나 불쾌한 웃음과 수수께끼 같은 말을 흘리고 가는 이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하몬 가족이 저주받은 집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20분마다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의 구조는 버렸지만 시종일관 음산함과 비명, 낭자한 선혈을 유지한다. 새로운 레퍼토리 드라마의 탄생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대세는 코미디

가을 시즌 승자와 방영 취소된 비운의 주인공들

새로운 TV시리즈가 쏟아지는 가을 시즌도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시즌 픽업과 취소라는 첫 관문을 넘어 살아남은 미드들을 살펴보니 코미디 장르가 강세다. 새 시리즈들 중에서 가장 먼저 픽업된 <뉴 걸>(FOX), <2 브로크 걸스>(CBS)에 더해 뉴욕에서 교외로 이사한 부녀의 적응기를 그린 <서버가토리>(ABC), 세 커플을 통해 남녀관계를 들여다보는 <휘트니>(NBC), 아기의 탄생 뒤 송두리째 바뀐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여피족 부부를 다룬 <업 올 나이트>(NBC) 등이 대표적이다. 6월에 방영해 좋은 반응을 얻은 <해필리 디보스드>(Lifetime)나 가을 시즌으로 자리를 옮긴 <해피 엔딩스>(ABC) 등을 더하면 장르의 강세는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승자가 있으니 패자도 있는 법. 가장 먼저 캔슬된 시리즈는 <플레이보이 클럽>(NBC)이다. <팬 앰>과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시카고의 ‘플레이보이 클럽’의 화려함과 어두움을 보여주려 했으나, 에피소드 3편 방영 뒤 시즌이 취소됐다. TV시리즈로의 부활을 꿈꾼 <미녀 삼총사>(ABC) 역시 미녀들의 터프한 액션에 미동도 하지 않는 낮은 시청률에 승복했다. 행크 아자리아의 섹스코미디 <프리 에이전트>(NBC)도 취소된 순서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패자가 떠난 자리를 채울 예비선수들도 대기 중이다. 지난주 나란히 방영을 시작한 <원스 어폰 어 타임>(ABC)과 <그림>(NBC)은 동화라는 주제를 판타지와 범죄수사물로 각기 다르게 풀어낸 TV시리즈들인데, 한날 한시에 방영되는 정면 대결은 피했지만 두 TV시리즈에 대한 세간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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