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Bebe(s)
감독 토마 발메스
상영시간 79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다국어
자막 한국어 / 출시사 유이케이
화질 ★★★☆ / 음질 ★★★ / 부록 ★★
<베이비>를 보면 페터 한트케와 빔 벤더스가 쓴 <베를린 천사의 시>의 도입부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이나 습관은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고 뛰어다니고 머리는 엉망이었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천사를 보지 못한다. 나는 간혹 아기 적 사진을 보곤 한다. 사진 속 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함박웃음을 짓거나 장난감을 옆에 둔 채 먹을 걸 손에 쥐고 있다. 그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갔는지 혹은 행복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영원히 그럴 것이다. 아기를 몇 시간만 떠맡아보라. 아기는 어느샌가 작은 악마로 변한다. 제 성에 차 웃다가도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한번 터진 울음은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는다. 아기는 영원한 물음표다. 그러나 <베이비>를 보는 시간은 마냥 즐겁다. 딱한 장면이 나와도 화면 안으로 뛰어들 일은 없으니, 그저 아이들이 생애의 첫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사람은 신기한 눈으로 70여분을 보내는 기쁨을 맛볼 것이고, 이미 아이를 둔 사람은 경이와 수고로 보낸 시간을 되돌려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 토마 발메스의 <베이비>는 몽골, 나미비아, 일본, 미국에서 태어난 네 아기의 첫해를 기록한 작품이다. 엄마의 배에서 갓 나와 눈을 뜨지 못하던 아기가 첫걸음을 뗄 때까지의 수만 가지 표정과 순간들이 영화의 전부다. 포니아오는 나미비아의 오푸우에서 태어난 아기다. 포니아오는 나무가 듬성듬성 자리한 초원과 흙과 강에서 자란다. 바야르의 출생지는 몽골의 바얀찬드마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하늘만 보이는 벌판은 아이에게 정기를 베푼다. 빌딩 숲이 빼곡한 도쿄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마리와 해티는 엄마와 아빠의 세심한 손길 아래 키워진다. 마리와 해티의 부모는 아기의 건강과 교육을 꼼꼼하게 챙기고 어딜 가나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 영화는 한마디의 내레이션도 삽입하지 않으며, 카메라는 아기만 바라볼 뿐이다. 아기 곁을 맴도는 부모가 종종 카메라에 잡히고 아기에게 말을 건네지만, 아기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듯이 영화는 자막을 제공하지 않는다(영어 부분에 붙여놓은 한글자막은 거추장스럽다).
네 아이의 성장 환경은 피부 색깔만큼 제각각이다. 깨끗한 집에서 그림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해티와 마리에 비해 포니아오와 바야르가 누리는 행복이 덜해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해티는 깨끗한 욕조에서 샤워와 거품목욕을 거치며 흰 피부를 가꾸지만 포니아오의 엄마는 침으로 아기의 얼굴을 닦고, 바야르의 엄마는 모유를 뿌려 얼굴을 소독한다. <베이비>는 가난한 제3세계의 아기를 동정하거나 현실의 개선을 촉구하는 작품이 아니다. 내 눈에는, 자연을 벗 삼아 노는 포니아오와 독립적인 습관을 갖추는 바야르가 더 기특해 보였다. 게다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 네 아이 모두는 괜한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말할 태세다. 네 아이에게선 차이보다 동질성이 더 느껴진다. 뜻 모를 미소와 폭발하는 울음이 그렇고, 손에 쥐는 족족 입으로 밀어넣는 게 그렇고, 성큼성큼 자라는 게 그렇고, 기어 다니면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그렇고, 갑자기 엄마라는 말을 내뱉는 게 그렇고, 드디어 걷기 시작하는 순간 진짜 말썽쟁이가 탄생하는 게 그러하다. 보는 내내 입가에선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영상과 유머러스한 음악 또한 귀여운 아기 모습과 장단이 잘 맞는다. DVD는 부록으로 아이들의 3년 뒤 모습을 담은 짤막한 영상(4분)을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