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캐릭터>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투성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캐릭터>의 고민은 곧바로 손광주 감독 개인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리얼리티라는 해방구를 찾지만 전형적인 캐릭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한계를 그려내며 과연 손광주 감독은 색다른 리얼리티를 찾았을까. 손광주 감독은 한사코 “<캐릭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영화에는 진정한 ‘리얼리티’에 대한 감독의 속 깊은 질문들이 묻어난다.
-영화 <캐릭터>는 캐릭터 구상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 개인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냐 아니냐를 물어보시는데, 아니다. 극중의 수연처럼 아버지가 아프지도 않고 형제끼리 사이도 좋다. (웃음) 이 영화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 당시에 힘들었던 점들의 자화상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원래 준비하던 영화가 잘 안됐다. 재밌는 코미디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힘겨움을 느꼈다. 특히 첫 장편에 대한 강박이 심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영화 만들기 전반에 대한 힘든 점과 기존 매체에서 접한 전형적인 캐릭터에 대한 반감에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각본과 연출, 제작, 편집까지 모두 도맡아 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지금까지 해온 일곱 작품 전부 전반 작업을 도맡아 했다. 가끔은 촬영도 직접 한다. (웃음) 나는 분업하는 게 더 힘들다. 영화 만드는 과정을 알다보니 오히려 맡기기가 힘들더라. 이제는 분업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웃음)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붙어 있다. 주인공인 시나리오작가 수연이 쓰는 이야기와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인데, 왜 두 가지 이야기를 대비시키는 구조를 택했나.
=일단 <캐릭터>에는 두 가지 리얼리티가 있다. 첫 번째는 모 감독과 수연이 만들어가는 영화 이야기. 두 번째는 얼핏 다큐처럼 보이는 작가 수연의 현실이다. 두 가지 이야기는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구성이다. 모 감독이 작가의 현실과 환경을 차용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니까. 그렇게 연계되는 부분을 대비시키고 싶어서 이런 구조를 선택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모든 등장인물들이 괴로워한다. 그런 괴로움은 감독 자신의 고충과도 맞닿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생각하는 ‘캐릭터’란 무엇인가.
=모 감독이 만드는 영화 속 캐릭터나 작가 수연의 캐릭터는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수동적 인물이다. 캐릭터는 어차피 만들어지는 인물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능동적인 느낌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리얼리티가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아버지가 아프고 가난한 작가 수연의 상황은 다분히 상투적이고 그런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 또한 상투적이다. 하지만 수연과 영화 속 여자 캐릭터가 사진집 <외침과 투쟁>을 발견하고 큰 전환을 맞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내 영화에서 가장 힘있는 캐릭터라고 한다면 사진집 <외침과 투쟁>의 역사 속 캐릭터들일 것이다. 그들은 말도 없고 배역도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살아 있는 느낌이 느껴지더라. 단순히 기록된 캐릭터임에도 만들어진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 그런 에너지들이 수연에게나 영화 속 여자에게나 어떤 암시를 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캐릭터> 속 모 감독은 ‘리얼리티’였는데, 본인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얼리티인 척하는 것들을 버리고 우리의 삶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리얼리티, 나아가 삶까지 바꾸는 리얼리티를 찾고 싶다.
-여주인공 이수연 역의 수현과의 호흡은 어땠나.
=수현씨는 영화 <플레이>로 데뷔한 연기자지만 그 이전에 모델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표정에 힘이 있더라.
-차기작은 준비 중인가.
=트리트먼트 상태로만 세 가지를 준비해놓고 있다. <캐릭터>가 그동안 내가 해왔던 작업들을 정리하는 느낌의 영화였다면 이번에 준비 중인 영화들은 기존에 있던 이야기들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