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드라이브>는 그냥 카체이스 액션영화가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해볼까?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과 <블리트>의 스티브 매퀸을 반쯤 섞어놓은 듯한 남자가 반젤리스풍의 음악이 흐르는 <블레이드 러너> 스타일의 LA에서 <펄프 픽션>의 악당들에 <올드보이>식의 광폭한 폭력으로 맞서는 유럽 예술영화와 80년대 비디오용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사생아. 그게 말이 되냐고?
신작 영화의 반응을 가장 노골적으로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시사회가 끝난 직후의 화장실이다. 묵은 배설의 환희 때문인지 사람들의 입에서는 영화를 다시 곱씹어 음미하기 전에야 튀어나올 수 있을 법한 직설적인 평가가 쏟아져나온다. <드라이브>의 일반 시사회가 끝난 화장실에서는 두 남자가 변기 앞에서 작은 설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 남자가 말했다. “개폼이네.” 남자의 친구가 대답했다. “개폼이긴 한데 그냥 개폼은 아니야. 뭔가가 더 있어.” 설전을 시작한 남자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는 어투로 화장실을 나가며 내뱉었다. “뭔 소리야. 이건 그냥 개폼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종종 무언가 지나치게 근사한 영화를 목도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설전을 벌이곤 한다. 개폼이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말하자면 <드라이브>는 ‘개폼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이름없고 말없는 천재 드라이버는 낮에는 할리우드 영화 촬영장에서 스턴트 드라이버로 일하고 밤에는 범죄자들을 현장에서 긴급하게 탈출시키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린(캐리 멀리건)과 가까워진다.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이린은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복역 중인 남편의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는 동안 남편이 이르게 출소한다. 남편은 감옥에서 얻은 빚을 갚기 위해 억지춘향으로 전당포를 털어야 하고, 주인공은 아이린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남편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어떤 범죄도 계획한 대로 굴러가지는 않는 법이고, 곧 주인공은 아이린을 보호하기 위해 혈혈단신 버니(앨버트 브룩스)와 니노(론 펄먼)를 비롯한 갱스터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누구야?
익숙한 이야기다. 제임스 살리스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드라이브>는 고색창연하고 진부한 할리우드 범죄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갖고 있다. 이런 영화가 어떻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감독상까지 가져갈 수 있었냐고? 그게 궁금하다면 먼저 덴마크 출신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레픈은 갑자기 튀어나온 초짜 감독은 아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등 라스 폰 트리에의 주요 작품들에 참여한 편집기사 아버지와 사진작가 어머니를 둔 레픈은 영화와 함께 성장한 전형적인 영화광 감독이다. 그의 재능은 24살에 만든 데뷔작 <푸셔>(1996)에서 이르게 폭발했다. 뒷골목 마약 밀매꾼(Pusher)들의 삶을 다룬 <푸셔>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사람들은 레픈을 영국의 대니 보일, 프랑스의 마티외 카소비츠,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묶어서 이야기했다. 데뷔작 이후의 행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곧 미국으로 건너와 조 터투로 주연의 스릴러 <피어 X>(Fear X, 2003)를 찍었으나 영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덴마크로 건너가서 <푸셔2>(2004)와 <푸셔3>(2005)를 찍어 이른바 ‘<푸셔> 삼부작’을 만들었다. 삼부작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지만 레픈의 재능은 데뷔작의 성공을 복제하고 또 복제하는 데 머무르며 타란티노보다는 마티외 카소비츠에 더 가까워져갔다. 그가 다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건 2008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만든 영국 최장기 복역수에 관한 영화 <브론슨>(Bronson)과 2009년에 만든 판타지 액션영화 <발할라 라이징>(Valhalla Rising)부터다.
<발할라 라이징>을 감명 깊게 본 사람 중에는 할리우드 배우 라이언 고슬링도 있었다. 당시 고슬링은 스스로의 이름으로 독립영화 하나쯤 제작하고 투자받는 데 큰 무리가 없는 거의 유일한 젊은 할리우드 배우 중 한명이었다. <드라이브>의 제작자는 그에게 감독을 선택할 수 있는 카르트 블랑슈를 줘버렸다. 고슬링은 즉시 니콜라스 윈딩 레픈에게 전화를 걸었고, 둘은 함께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당시 나는 덴마크에서 감기를 옮아온 탓에 해열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였다. 고슬링과 대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정신이 좀 나간 상태였고, 그에게 집까지 좀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고슬링은 어색함을 없애려고 차 안에서 음악을 틀었고, 나는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감정적으로 북받쳐서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야밤에 팝송을 들으며 LA 시내를 운전하는 게 유일한 위안인 남자가 주인공인 <드라이브>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고슬링에게 물었다.” 고슬링의 대답은 “네가 하면 나도 한다”였다.
동화적인 동시에 영화광적인 영화
그런데 <드라이브>의 어떤 점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마음을 이끌었던 것일까. 사실 제임스 살리스의 원작을 토대로 한 애초의 각본이 관습적인 할리우드 갱스터 스릴러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레픈은 <드라이브>의 이야기에서 현대적인 동화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나는 <드라이브>가 그림 형제의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원형적인 캐릭터들이 있다. 캐리 멀리건은 숲속을 헤매는 순결한 소녀, 라이언은 그녀를 구하러 오는 빛나는 갑옷의 기사, 론 펄먼은 칼을 든 난쟁이다. 그들은 모두 원형적으로 디자인된 인물들이고, 책략으로 가득한 현대 도시 LA를 배경으로 동화를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나로 하여금 이 프로젝트를 맡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가 인용하는 영화는 의외로 <귀여운 여인>이다. “<귀여운 여인>은 동화적인 구조를 병적으로 어두운 테마의 이야기에 접목시킨 거의 유일하게 성공적인 사례다. 나는 <드라이브>도 <귀여운 여인> 같은 동화가 되길 원했다.”
<드라이브>는 동화적인 동시에 가히 영화광적인 영화라고 할 만하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이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 속에 그가 지난 40년간 섭취해온 온갖 영화적 자양분과 레퍼런스들을 쏟아넣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티브 매퀸의 전설적인 카체이스 영화 <블리트>(1968)다. 사실 <블리트>는 이후 등장한 모든 할리우드 카체이스 영화에 영향을 끼친 영화지만, 중요한 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60~70년대 초창기 할리우드 카체이스 영화가 지녔던 어떤 정수를 <드라이브>에 담아내려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압도적으로 폭발하는 CGI 자동차들의 향연 대신 진정으로 캐릭터의 여정을 따르는 하나의 감정적 오브제로서의 자동차가 있다. 레픈은 마이클 베이처럼 자동차를 이리저리 굴리고 날려버리는 데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LA의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주인공을 통해 자동차를 진정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마치 오래전 스티브 매퀸의 자동차 영화들, 그리고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1971)이나 <늑대의 거리>(1985)가 그랬듯이 말이다. <드라이브>의 주인공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가 <블리트>의 스티브 매퀸이 몰던 머스탱과 동일한 모델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70~8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처럼
그런데 <드라이브>가 인용하는 영화는 <블리트>가 전부는 아니다. 묵언수행을 하듯 말이 없는 주인공 캐릭터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없는 남자’ 삼부작과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1967)를 연상시키고, 영화의 전반적인 정조는 70~80년대 싸구려 범죄액션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특히 돈 시겔의 영화들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감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언급하는 영화 중 하나는 존 부어먼의 <포인트 블랭크>(1967)다. 명료한 범죄소설 원작을 자기 구미대로 해체한 뒤 초현실적인 예술영화로 만들어버린 존 부어먼의 태도와 <드라이브>를 만든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태도에는 닮은 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포인트 블랭크>는 배우 리 마빈이 존 부어먼을 직접 연출자로 간택한 영화였고, <블리트> 역시 스티브 매퀸이 직접 피터 예이츠를 감독으로 선택한 영화였다. <블리트> <포인트 블랭크> <드라이브>는 공히 배우가 감독을 선정한 영화이며, 이럴 경우 스튜디오의 간섭이 덜해지면서 연출자의 고유한 특성이 더욱 도드라진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드라이브>가 21세기의 영화라기보다는 70년대, 혹은 80년대 개봉한 액션영화처럼 보이는 것은 스튜디오의 간섭 없이 예술적인 지휘권을 충분히 휘두를 수 있었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의도다. 그는 “나는 80년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90년대는 나에게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않았다. 나는 80년대의 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다.” 톰 크루즈의 <위험한 청춘>(1983)이나 80년대 존 휴스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핫핑크 색깔의 크레디트 폰트는 물론이거니와, <드라이브>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정말로 80년대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다. LA 시내를 비추는 부감숏에서는 예외없이 반젤리스풍의 센티멘털한 신시사이저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이건 LA를 미래의 누아르 무대로 포장했던 <블레이드 러너>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보인다. 호러영화광들이라면 라이언 고슬링이 가면을 쓰고 론 펄먼을 처단하는 전체 시퀀스에서 존 카펜터의 <할로윈>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이 시퀀스는 액션이 아니라 순도 100%의 호러 장르에 가깝다). 특히 영화의 촌스러울 정도로 80년대적인 사운드트랙은 <드라이브>의 복고적 스타일에 기묘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말하자면 <드라이브>는 80년대 미국 문화를 섭취하며 자란 젊은 유럽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낸 시대와 문화의 하이브리드 생명체에 가깝다.
몇몇 평론가 및 관객은 <드라이브>가 관습적인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유럽 예술영화의 분위기로 포장한 일종의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미국 개봉시 <드라이브>는 굉장한 비평적 상찬을 받았지만(로튼토마토 수치는 92%에 달한다), <뉴욕 매거진>을 비롯한 몇몇 언론들은 이게 “고상한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역시 그런 의심이 있을 거라는 걸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는 심지어 영화 속 캐릭터의 대사를 빌려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80년대에 액션영화를 좀 제작했지. 평론가들은 유러피언 분위기라고 칭찬했지만 내가 보기엔 쓰레기였어.” 그런데 <드라이브>가 독창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유럽적인’ 분위기라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이해가 안된다면 몇몇 유럽 출신 감독들이 할리우드 공장 시스템으로 팔려와서 만든 몇몇 상업영화들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뤽 베송의 <제5원소> 혹은 폴 버호벤의 <로보캅> 같은 영화들 말이다. 조금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두기봉이 프랑스 자본으로 프랑스 배우와 함께 홍콩에서 만든 <복수>와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다국적 배우들을 홍콩으로 데려가서 만든 <보딩 게이트> 역시 <드라이브>와 비교해서 볼 만한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