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나면 촬영장에 가요.” 이게 무슨 말이냐고? <일단 뛰어> 촬영에 ‘맛들인’ 송승헌이 밝히는 여가 보내기법이다. 촬영이 있을 땐 당연히, 촬영이 없을 때는 기꺼이. 일요일에도 기어이 학교운동장 가서 공차야 직성이 풀리는 에너제틱한 꼬마아이처럼, 송승헌은 요즘 부르건 안 부르건 일단 뛰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별명이 있으니, 바로 ‘송 감독’. 동갑내기인 조의석 감독이 고안해낸 말로, 사석에서 자꾸 말을 놓으라는 ‘감독님’의 제안을 고사하고 존대를 유지하는 송승헌이 얻은 호칭이다. 야자타임의 반대 버전이라고나 할까. 감독뿐 아니라 배우도 제 또래가 대부분인 <일단 뛰어>에서 송승헌은 즐거운 이완에 힘입어 ‘주인의식’이라 할 만한 열정에 가득 차 있고 “작품 하면서 살이 찌는” 진기한 경험까지 하고 있다.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이 늘 있던 드라마 현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그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며, 송승헌은 잦은 웃음과 장난기 밴 말투로 인터뷰도 내내 경쾌하게 했고, 그런 그에게선 인간적인 친근감이 물씬 풍겼다.
송승헌을 이토록 즐겁게 하는 영화 <일단 뛰어>는 어떤 이야기일까. 어느날 차 위에 떨어지는 피투성이 사람과 수십억 상당 달러자루. 사람은 버리고 돈은 챙겨 일단 뛰고 보는 돈벼락 맞은 고등학생들과 이 사건을 수사하는 한 형사가 벌이는 코믹액션 드라마다. 송승헌이 맡은 역할은 고등학생 일당 중 가장 껄렁껄렁한 졸부집 외아들 최성환. 미국에 조기유학을 갔다가 갱단 생활을 한 화려한 ‘이력’까지 보유한, 유학파 양아치 고등학생이다. “글쎄, 보통 때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죠. (웃음) 건방지고 남 눈치 안 보고, 한마디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애거든요. 근데, 연기를 하면서 왠지 그냥 좋아하게 됐어요.” 캐릭터로서 성환의 매력은 무엇보다 ‘껄렁껄렁’하다는 점. 마치 친구들과 사석에서 ‘놀듯’, 그렇게 편하게 있어도 좋다는 거다. “풀어논 말처럼 마구 달리는 거죠. 욕도 맘대로 할 수 있고, 담배도 양껏 피우고. 뭐 너무 뛰었다 싶으면 감독이 알아서 절제를 해주니까요.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지난 연말, 송승헌에겐 잊을 수 없는 술자리가 하나 있었다. 그의 첫 영화 <카라>를 연출했던 송해성 감독이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다음날, ‘송 감독’과의 축하 술자리였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눈에 띄어 292513=storm 의류 카탈로그 모델로 데뷔, 인기시트콤 <남자셋 여자셋>,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찍었던 첫 영화가 <카라>. 하지만 <카라> 촬영 당시 송승헌은 드라마 <해피 투게더> 촬영이 겹쳐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고 제작중단 등 외적인 문제도 겪었다. 그저 ‘영화란 이런 거구나’ 하는 체험으로 만족했지만, 종종 송해성 감독을 만날 때면 “우리 복수전 해야죠” 하며, 그 역시 ‘차기작’을 별러왔던 터. 이젠 송승헌의 차례일까. <가을동화> 이후 누리고 있는 중국어권에서의 인기는 실감 못할 정도로 크지만, 그는 ‘바로 여기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한명의 배우로 바로 서겠다는 소망을 버린 적이 없다. 지난해 홍콩에서 촬영을 마친 <석양천사>(연출 원규, 주연 서기·조미·막문위), 또 진가신 감독이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중인 영화가 한편 또 있긴 하지만, 그가 <일단 뛰어>를 진정한 차기작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물다섯, 참 좋은 나이. 무명 시절 없이 지금까지 온 시간들을 그는 “운도 좋았다”라고 말한다. 앞으로는? 만약 성환처럼 돈벼락을 맞는다면 “저금을 할 것이다”라는 송승헌은, 요즘 “멋지게 늙어가는 평생 연기자”가 되기 위해 그만의 저금에 열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