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센치한 것도 자신 있걸랑요” <공공의 적> 유해진
2002-01-16
글 : 박은영
사진 : 정진환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무사> <공공의 적>의 공통점은? 흥행작? 아깝지만, 땡이다. 개봉 대기중인 <공공의 적>이 포함돼 있으니, 똑 떨어지는 답은 아니다. 정답은 바로 유해진의 대표작 목록이다. 유해진. 그 이름이 낯설다면, 배역으로 기억해 보자. 용가리, 꼬마 마천수, 도충, 용만이. 그러고보니 유해진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무사>의 도충을 제외하면, 밑에서 받치고 위에서 눌리고, 그러다 살아보겠다고 배신도 하는,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컬렉션이다. 빠뜨릴 수 없는 의미는, 그들 모두 극에 윤기를 주는, 웃음 제조자의 역할이라는 사실.

어찌 보면 험악하고, 어찌 보면 유순한 유해진의 얼굴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다. 말씨에서 흐르는 토속적인 느낌은 또 어떤가. 그래서인지 그에게 맡겨지는 역할들은 지방색이 강하게 묻어나는 양아치 또는 건달. <공공의 적>에서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들려들어가 취조당하는 칼잡이 용만으로 분했다. 칼잡이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은퇴한, 그러나 아직도 연장만 보면 흥분하는 양아치 용만은 미궁에 빠진 사건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고 흐뭇해하는 그는, 칼잡이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기 위해, 오직 그 한신을 위해, 액션스쿨에 다니며 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한 배우인지를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일화. <신라의 달밤>에서 그는 조직을 배신했다가 돌아오는 역할을 맡았는데, 다시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대목에서, ‘형님’이랑 똑같은 헤어스타일(마천수 파마)로 변신하고 나타났다. 그의 설정에, 김상진 감독도 무릎을 쳤다. “그건요, 혼자 튀어보이고 싶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거든요.” 대개의 시나리오가 조단역 캐릭터의 언행에 많은 동기를 부여해주지 않는 걸 그도 알고 있어서다. “한번 배신한 부하를 다시 받아들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타당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타당성. 대사로는 허락이 안 되니까, 비주얼로 보여주자고 했죠.”

분신들과 달리, 유해진은 양아치 세계에는 발가락 담가본 전적도 없는 사람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에 그 우물 파기에 바빴던 것. 고 추송웅씨의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광대>를 본 중학교 2학년 때, 배우가 되기로 처음 결심했고, 이후 한번도 한눈을 판 일이 없다. 연기 전공을 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의상학’을 전공했고, 뒤늦게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다. 극단 목화 소속으로 무대에 자주 올랐는데, 연극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가 출연했던 <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 <춘풍의 처> <여우와 사랑을>을 기억한다. 영화로 건너온 것은 아는 형의 권유로 <블랙잭>의 오디션을 보면서부터. <무사> 전까지는 연극도 겸했지만, 지금은 영화에만 전념하고 있다.

얼마 전 유해진은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었고, CF에도 출연했다. 양아치 전문 배우로 각인될까 우려할 법한데도, “그런 이미지로 기억해주는 것도 고맙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겸허해 한다. “사람 냄새, 땀 냄새 나는 영화가 좋다”면서 그가 슬쩍 한마디 더 덧붙인다. “서정적인 것도 되게 좋아하는데…. 나도 가끔은 ‘센치’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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