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양극화가 심하지 않나. 가진 자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분노가 많이 담겨 있더라. 만약 내가 그대로 만들면 왜 저렇게 편협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4편은… (중략)… 사회가 보이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다.” <공공의 적 2012>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에서 강우석 감독이 전한 이 말은 최근에 일기 시작한 어떤 경향을 일깨워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모순의 현실을 가공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와 영화의 재료로 사용하는 이러한 기류는 불과 몇년 전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2000년대 중반 한해에 10편 넘게 쏟아져 나왔던 ‘경찰영화’가 대부분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비리형사의 면면을 파헤쳤던 것을 상기해보라. 사뭇 달라진 이같은 상황은 비단 형사를 주인공 삼은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당거래>(2010)뿐만 아니라 <모비딕>(2010)이 그러했고, 올해 <도가니>가 그러했다. <특수본> 역시 경찰들의 비리를 과녁으로 삼았다. 하지만 분노를 장전한 뒤 뜸들이지 않고 악을 정조준한다. <특수본>은 그러니까 분노의 직격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경찰영화다.
폐공장에서 지구대 소속의 한 경찰이 사체로 발견된다. 그가 탄 순찰차는 불타버렸고, 사체에는 다량의 마약이 뿌려져 있다. 특별수사본부에 배치된 성범(엄태웅)과 동료 강력반 형사들은 죽은 경찰이 과거 마약거래 혐의로 체포된 유흥업소 사장 강도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용의자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특별수사본부에 자원한 젊은 범죄분석관 호룡(주원)은 현장에서 발견된 필로폰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페이크라며 살해사건이 단순 마약 관련 범죄가 아니라고 짐작한다. 특별수사본부의 추적이 계속되는 동안 죽은 경찰을 폐공장으로 불러낸 이의 신원이 밝혀지고, 이 과정에서 현직 경찰인 박경식(김정태)이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박경식은 매번 특별수사본부의 포위망을 빠져나간다. 얼마 뒤 강도식의 뒤를 이어 관내 유흥업소를 장악한 윤일도가 살해당하고, 상부에선 박경식을 사살해도 좋으니 어서 빨리 사건을 종결지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 새끼’와 ‘내 새끼’
<특수본>은 버디무비의 골격을 끌어들여왔다. 이죽거리는 것 빼곤 그닥 잘하는 것이 없는 성범과 현장 경험이라곤 전무한 호룡은 함께 일하게 된 첫날부터 신경전을 벌인다. 박경식의 검거가 지체되자 내부에서 정보를 흘리는 누군가가 있다고 판단한 호룡은 특별수사본부의 팀장인 박인무(성동일)의 뒤를 밟는다. 성범 역시 박경식의 집에서 과거 박경식과 박인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지만 그렇다고 형처럼 따랐던 박인무를 의심하진 못한다.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이던 성범이 호룡과 파트너가 되는 건 호룡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과거사를 털어놓은 뒤다. 호룡은 비리수사 중에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했으며, 박인무가 자신의 죽은 아버지를 되레 비리경찰로 내몰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버디무비로서 포장된 <특수본>이다. 하지만 성범과 호룡을 짝으로 묶어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 <특수본>은 좀 싱거운 장르영화가 되고 만다. 성범과 호룡의 갈등은 두드러지게 묘사되지 않으며, 사건의 진행을 설명해주는 정보성 대사들을 주고받을 때도 적지 않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을 성범이라는 인물로 좁혀서 생각해도 별반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성범은 수렁에 빠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자꾸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그러는 동안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진다. 명확해 보이는 사건을 미스터리하게 만드는 방해자의 역할을 떠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특수본>에서 캐릭터들의 매력을 찾을 순 없는 것일까. <특수본>에서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해 반복되는 대사는 ‘새끼’다. 입버릇처럼 인물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새끼는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 새끼!’의 새끼와 ‘내 새끼!’의 새끼는 서로 다르다. <특수본>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 새끼’에 속하는 이들과 ‘내 새끼’에 포함되는 자들로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다. <특수본>은 박경식의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그를 돕는 박인무를 통해 박경식이 ‘내 새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성범과 호룡이 ‘내 새끼’들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어 있는 ‘그 새끼’를 찾아낼 수 있는 동력을 찾게 되는 것도 넓은 의미의 가족애다.
<특수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가 흡사 가계도(家系圖)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인무는 누가 ‘내 새끼’들을 노리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적을 제압할 힘을 갖진 못했다. 그에게 주어진 최선은 방관이다. 박경식은 어떤가. 그는 아버지 같은 박인무 대신 칼을 들어야 했던 처지다. 그에게 주어진 최선은 도피다. 성범 역시 적당히 때가 묻었으나 아직 세상을 파악할 만큼 속이 깊진 못하다. 그에게 주어진 최선은 그러니 무지다. 그랬던 그들이 ‘내 새끼’가 아니라 ‘그 새끼’로 오인받아 죽음에 이른 아버지를 둔 호룡의 등장으로 흔들리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최선이 실은 최악의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황병국 감독은 성범이라는 인물을 제시할 때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특수본>은 성범의 성장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성범이 이권에 눈이 먼 또 다른 아버지를 처단하기 위해 그의 앞을 가로막아선 마지막 장면. 얼굴을 가린 성범은 아무것도 모르는 성범이 아니라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성인으로서의 성범이다.
눈길 사로 잡는 공간을 활용한 액션신
아마도 <특수본>을 보는 관객은 사건의 전개 방식이나 인물간의 긴장 형성보다 빠른 호흡의 액션에 더 열광할 것이다. 특히 공간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데, 적은 제작비의 한계를 아이디어로 돌파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타이 마약상들을 잡기 위한 성범의 추격 장면이나 박경식이 한 무리의 형사들을 물리치기 위해 지게차로 위협하는 장면들은 수직의 구도를 최대한 활용해 주목도를 높였다. 밀폐된 공간인 봉고차 안에서 목숨을 담보로 해 총 한 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남자들의 쟁탈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제작진은 홍콩영화 <천공의 눈>의 컨셉을 참조해 로케이션 장소를 선택했다는데, 인천의 만수시장, 경북 예천의 대구 담배재료 창고 등에서 촬영된 영화의 공간들 역시 액션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흥미로운 건 자주 쓰인 부감숏이다. 취조실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인물들이 대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인물을 내리찍듯이 눌러본다. 그게 몇 마디 대사보다 효과적이다.
성범과 호룡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적을 주저없이 찾아내 처치하는 후반부는 흡사 게임처럼 이뤄지는데 공공의 적을 처단하는 데서 오는 복수의 통쾌함을 즐길 관객도 있을 것이다.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냐는 직접적인 호소는 단순하지만 흡입력이 있다. 성범과 호룡의 액션에 시장 상인들의 분노를 나란히 병치시킨 것도 호소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명징하게 구별하고, 더 나아가 악이라고 규정된 무엇을 짓밟아 선의 귀환을 선포하는 이 방식은 위험한 오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폭력은 면죄부가 주어지는 순간 과용의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건 제작진의 의도 혹은 진심과는 별개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특수본>이 택한 힘없는 자들의 해피엔딩이 <부당거래>의 공공의 적들이 보기에 가소로운 것이라면? 직격탄의 한계는 단 하나의 표적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없애지 못할 바에야 다스리는 게 현명한 법이야.” 빅보스의 비아냥은 성범과 호룡의 마지막 웃음의 의미를 씁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