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보여주는 엄숙주의와 형식주의의 파괴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2011-12-07
글 : 김태훈 (영화평론가)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두개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김태식 감독이 바캉스를 소재로 연출했으며 두 번째 에피소드는 웨딩을 소재로 박철수 감독이 연출했다. 배우 조선묵이 두 에피소드에 다 출연하지만 두 에피소드가 같은 이야기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6년째 불륜을 유지하고 있는 유부남 태묵(조선묵)과 희래(안지혜), 그리고 태묵의 아내인 복순(이진주)이 주인공이다. 태묵과 희래는 해외여행을 가기로 하지만 출국하는 날 태묵은 이 사실을 알게 된 복순에게 붙잡혀 무주의 펜션에 감금된다. 복순은 태묵의 휴대폰으로 희래에게 무주로 오라는 문자를 보내고 이후 펜션에 도착한 희래도 역시 감금된다. 얼핏 보면 이야기나 상황 설정은 단순하지만 영화를 가득 채우는 것은 서사가 아니다. 태묵은 개 줄에 묶여 복순에게 동물 취급을 당한다. 태묵은 어설프게 탈출을 감행하고 그런 태묵을 잡으려고 복순은 지게차를 타고 또 어설프게 추격전을 벌인다. 태묵이 동물 취급을 당할 때 느닷없이 기린의 인서트가 등장하고 답답한 태묵이 하늘을 보고 뭐라고 말씀 좀 해달라고 하자 하늘에서 수박이 뚝 떨어진다. 영화는 고전적인 서사체의 인과율로 진행되지 않는다. 복순의 말투나 억양은 어딘가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잘 맞아떨어져 웃음을 유발하고 태묵은 성기가 절단된다. 잔인할 것 같지만 유쾌하다. 영화는 이렇게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상징 위에 위트와 유머를 얹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조선묵)와 제자 수지(오인혜)의 이야기다. 수지는 어느 날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교수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교수는 둘만의 근거지로 돌아오고 수지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에 교수를 찾아와 그와 정사를 나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갖가지 실험을 한다. 흑백과 컬러를 교차시키고 상상과 현실을 뒤섞고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교수이자 영화감독이다. 영화는 메타 영화의 자기 반영성 위에 “인간은 늘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다”는 영화의 명제를 다양한 실험들로 쌓아 올린다. 그리고 영화 속 영화, 혹은 영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메타 영화의 성격은 작품 전체로 확대된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영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한다.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어떻게 캐스팅되었는지를 짧게 언급하며 두개의 극영화가 마무리된 뒤 전체 영화의 제목을 결정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적 엄숙주의, 영화적 형식주의를 깨뜨릴 수 있을까?”라는 문구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 문구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을 요약한다. 메타 영화는 자기 반영과 자기 성찰을 전제한다. 영화는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뒤돌아보고 뒤척이며 고민하는 자기 성찰의 몸부림과 그러한 의지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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