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먼저인가, 취재원 보호가 먼저인가. 기자들의 영원한 딜레마다.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대부호 헨리크 방예르에게 가문의 어두운 과거를 비밀에 부쳐달라는 청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이 딜레마를 현실에서 떠안게 된 이가 있다. <뉴요커>의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덴비가 그다.
사연은 이렇다.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12월21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소니픽처스는 사전 언론시사를 진행했다. 시사에 참석한 기자들은 12월13일까지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금지를 뜻하는 매스미디어 용어)에 동의해야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뉴요커>의 데이비드 덴비도 그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뉴요커>는 12월5일자에 리뷰를 공개하기로 결정했고, 제작자 스콧 루딘은 향후 자신이 주최하는 언론시사에 덴비를 다시는 초대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래도 덴비가 사과문만 보낸 뒤 예정대로 기사를 싣기로 하자 소니픽처스는 12월4일 새벽 2시에 시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다시 한번 협조를 당부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내용에는 덴비를 향한 비난도 섞여 있었다.
<뉴요커>가 소니픽처스와 약속한 엠바고를 어긴 데 대해 당사자들은 강도 높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우선 당사자인 덴비는 연말 성수기와 시상식 시즌을 노린 영화사들의 “정신 나간 개봉 스케줄”에 일일이 기사 일정을 맞추기란 곤혹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루딘은 “크리스마스 시즌용 영화의 과잉공급이 새로운 일도 아닌데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며 딱 잘라 말했다. 논쟁이 필요 이상으로 과열돼 보이는 이유는 덴비의 평이 호평이기 때문이다. 이에 <데드라인 할리우드>의 니키 핑크는 소니픽처스사의 목적이 단지 홍보 시기에 맞춰 기사 게재 시점을 조정하려는 것이라면 <뉴요커>가 “할리우드의 홍보 기계로 전락”해선 안된다고 단언했다. 다만 관객으로서는 미덥지 못한 변명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언론사나 이번을 기회로 유통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영화사나 석연찮아 보이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