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던 날 ‘오인혜’라는 낯선 이름이 인터넷창을 뜨겁게 달궜고 우리도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됐다. 속이 훤히 비치는 과감한 드레스 한벌의 효과는 컸다. 오인혜는 영화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의 여주인공(영화는 두편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이며 오인혜는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검은 웨딩’ 부분의 주연이다)으로 영화제에 초청됐지만 ‘드레스의 그녀’로 더 잘 알려지게 됐다. 그녀의 출연작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이 개봉을 맞았고 그녀를 만났다.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좀 이상했지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혹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목소리가 독특하다는 말 안 듣나.
=많이 들었다. 얼굴 이미지하고 많이 다르다고.
-답변 매뉴얼이라도 있을 만한 질문부터 하자. 드레스 하나로 파장을 일으켰다. 그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나.
=전혀. 영화제가 축제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재미있게 뭔가 한번 남겨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도발적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인지라 수위를 잘 몰랐다. 코디나 매니저도 없는 상황이어서 약간 오버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동안 무명이었던 나에게 반응을 해주신 것이니 지금은 추억이다.
-이후에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이 뒤따랐을 거다.
=개막식 다음날에는 인터뷰에서 드레스 이야기만 해야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드레스를 늘려 입었네 어쨌네 그러는데, 소속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분장팀을 통해 웨딩드레스숍 한 군데를 소개받았고 그 웨딩숍의 카탈로그에 있는 그대로 입은 것뿐이다. (웃음) 손본 거? 있다. 원래는 치마가 배 아래까지 트여 있어서 오히려 꿰맨 거! 이렇게 말했더니 낡은 드레스를 새로 고쳐 입었다고 기사가 나가서 디자이너 선생님이 화가 나시고, 선생님께 죄송해서 울었더니 악플 때문에 속상해서 울었다고 또 기사가 나더라. 이제는 인터뷰 있을 때마다 말조심을 하려고는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내가 좀 솔직한 편이라. (웃음)
-일반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
=악플도 많았다. 그중에는 여기서 말해도 차마 기사에는 쓰지 못할 그런 말도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팬카페가 생겼다. 지금은 팬카페만 들어가본다. 274명이니까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에 두세명씩 늘고 있고 빨리 정기모임을 하자고 한다. 내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나름대로 털털한 면이 엿보인다.
=원래 털털하다. 그런데 소심하기도 하다. 거절도 잘 못한다. 그런 양면을 다 갖고 있다. AB형이라서 그런가 보다.
-영화를 보면, 박철수 감독이 “인혜가 수지하고 이미지가 맞다”라고 스탭 회의 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교수가 여제자의 관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야기다. 내가 날 보고 관능적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여하튼 이미지가 수지하고 겹쳤다고 하시더라. 아는 드라마작가 소개로 시나리오 읽고 오디션 보러 가던 날, 감독님이 카페 입구에서 나를 우연히 보셨나 보더라. 내가 오디션 보러 온 사람인 줄 모르고 “야, 쟤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더라. (웃음)
-영화에서 노출이 좀 심한 편이다. 그게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
=베드신, 사실 고민됐다. 시나리오상에서는 더 많았다. 하지만 오랜 무명 생활 중에, 이 영화가 기회가 될 거라고 봤다. 주변 연기 선배들도 박철수 감독 영화면 무조건 하라고 하더라. 감독님도 다른 사람 몰라도 너에게는 떳떳한 영화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노출장면에서는 구태여 디테일하게 할 필요 없다고, 그 행위를 한다는 것만 강조하면 된다고 하셨다. 마지막 베드신 찍을 때는 내가 많이 예민해져서 감독님에게 “왜 나만 자꾸 주도하냐”라고 물어봤는데, “수지는 당돌하고 교수는 너의 관능에 미쳐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베드신 때마다 옆에서 디렉션과 리액션을 해주셨다. (웃음)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몸에 잘 붙거나 잘 풀리거나 한 장면이 있나.
=노교수와 자동차를 타고 가며 농담을 하는 장면. 자연스럽게 장난치듯이 연기했다.
-부산영화제 이후에 매니지먼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있었을 거다.
=내가 올해 만으로 스물일곱이니까 적지 않은 나이다. 23살에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가 오디션만 보러 다니다가 6년 정도 지났고 염증을 느껴 지금은 혼자 활동하는 거다. 지금 시점에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가면 이슈가 된 나를 이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나 혼자 몇 작품 더 하고 어느 정도 위치가 됐을 때 들어가고 싶다.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회사가 있다면 끝까지 함께 갈 거다.
-상황이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느냐가 남들보다 더 중요할 거다.
=박철수 감독님 차기작 영화는 무조건 할 거다. MC 제안도 들어오지만 당분간은 연기에 전념하고 싶다. 이번 영화보다 노출이 더 센 영화도 제안이 들어왔다. 정말 하고 싶었는데 노출은 당분간 자제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결국 안 하기로 했다. 아, 그런데, 이런 거 안 물어보나? 어떤 배우가 좋나, 어떤 영화 재미있게 봤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나, 같은 거. (웃음) <씨네21>이면 영화 관계자들이 많이 볼 것 아닌가? 대답까지 준비해왔는데.
-(웃음) 그럼 차례대로 물어보자!
=제일 동경하는 배우는 페넬로페 크루즈다. 어렸을 때 한 잡지 표지에서 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멍하게 쳐다본 적도 있다.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무언가.
=난해한 영화를 좋아한다.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어렸을 때부터 매우 재미있게 봤다.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혹시 봤나? 너무 독특하다. <안티크라이스트>도 그렇다. 인간의 본성을 다룬 그런 영화들이 배우인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여주인공 역할 같은 거다. 정신병자 같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한 그런 여자.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 물론 상업영화도 하고 싶다. 안 하고 싶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럼 동경하는 상업영화의 캐릭터를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
=<싱글즈> 같은 영화가 좋다. 상업영화 중에 여자 이야기가 별로 없지 않나. 고 장진영 선배님이 하셨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여주인공 같은 캐릭터를 맡겨주시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