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동남아시아영화, 왜 그렇게 난리냐고요?
2011-12-21
글 : 송경원
해외특별전 ‘팔방미인 아시아영화’, 12월22일부터 4일간 인디플러스에서

새로운 물결이 몰려온다. 어쩌면 부지런한 시네필들은 이미 푹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 몇년간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곳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동남아시아의 영화들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고 이국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오늘날 동남아시아 각국의 아름다운 영화들은 전세계 영화인들의 고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과연 세계는 지금 왜 동남아시아영화에 주목하는가. 최근 각종 영화제를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며 국내 관객의 궁금증을 달래주곤 했지만 의문을 해소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이같은 갈증을 해소하고자 12월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 인디플러스에 영화의 단비가 내린다. 인디플러스에서 개최하는 해외특별전 ‘팔방미인 아시아영화’에서는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타이영화 4편, 말레이시아영화 3편, 필리핀영화 1편 등 총 8편의 영화가 한자리에 모인다. 새로운 영화적 활력과 영감을 머금은 영화들의 면면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이 자리를 통해 ‘요즘 대세’인 동남아시아영화의 생기어린 도약을 확인해보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으로 익히 잘 알려진 타이영화는 ‘가장 장래성있는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4편의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아노차 스위차콘퐁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우주의 역사>(2009)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청년 푼의 이야기다. 푼을 돕기 위해 고용된 남자 간호사 아케와 그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푼의 모습은 여느 드라마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묘한 관계를 끈덕지게 응시한 끝에 한 인간의 탄생을 거대한 우주의 섭리와 연결시키며 삶의 위대함을 이미지화한다. 2011년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시바로자 콩사쿤 감독의 <영원>(2010) 역시 환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겹쳐 인간성을 회복시킨다. 유령이 된 한 남자가 어린 시절 고향을 찾았다가 다시 죽음의 순간으로 돌아오는 독특한 에피소드식 구성이 실로 흥미롭다. 하나 그 과정에서 잊지 말고 목격해야 할 것은 이른바 ‘죽음’이라는 시간의 지속 혹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아딧야 아사랏 감독의 <원더풀 타운>(2007)이나 통퐁 찬타랑쿤의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 (2011)도 유사한 정서를 공유한다. 쓰나미가 닥친 타이 남부 조그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 사랑, 이별을 그린 이 영화는 떠나보낸다는 것의 의미를 치유의 풍경에 담아 조용히 펼쳐놓는다. 한편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출발하는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한 가족의 화해와 이해를 그린 로드무비다.

현실과 환상을 겹쳐놓는 타이영화에 비해 말레이시아영화는 좀더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다. 호유항 감독의 <새벽의 끝>(2009)은 현재 말레이시아 청년 세대의 어두운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드라마다. 카메라는 미성년자를 임신시키고 폭행으로 구속되는 등 방황을 일삼는 청년 툭과 그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서늘하고 냉정하게 응시한다. 반면 우밍진 감독의 <물을 찾는 불 위의 여자>는 아름답고 잔잔한 풍광 위에 사랑과 용서를 수놓는다. 생경하고 이국적인 풍경 뒤로 두 세대를 아우르는 유대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의 롬멜 톨렌티노 감독의 <노노>는 빈민가 소년 토토를 통해 순수한 동심을 엿볼 수 있는 사랑스러운 동화다. 동남아시아영화 특유의 환상성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이 작품 또한 신화에서 픽션, 다큐멘터리까지 재현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남아시아영화적 정서의 연장선에 있음이 분명하다. 특히 롬멜 톨렌티노 감독은 통퐁 찬타랑쿤 감독과 함께 방한해 관객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라니 동남아시아영화의 비밀이 궁금한 관객이라면 마술 같은 그들의 영화를 만난 뒤 직접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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