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성근이 영화를 연출한다. 정치영화다. 제목은 ‘혁신과 통합’. 직접 출연도 할 계획이다. 새해 1월15일에 있을 민주통합당 대표를 뽑는 오디션에도 뛰어들었다. 이쯤하면 뭔 소린지 눈치챌 것이다. 지난해 9월, 문성근은 “배우 안 해도 좋다”면서 시민들이 중심이 된 ‘국민의 명령’ 운동을 시작했다.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재집권을 저지하려면 진보진영이 힘을 합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기존의 낡은 정치 구조 대신 시민의 역량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정치인 문성근이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시민의 권리를 되찾아오겠다는, 열혈 시민의 정당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흘렀다. 대선이 꼭 1년 남은 12월19일, 문성근은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인사들로 구성된 시민통합당이 뭉친) 민주통합당 당 대표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 명령’의 대표로, ‘통합과 혁신’의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도 짬짬이 시간을 내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에도 출연한 문성근. 잠시 배우 직(職)을 내려두고 정치 업(業)을 들쳐업은 문성근에게 물었다. 정치인 문성근, 흥행할 수 있을까요?
-바쁜 일정에도 <부러진 화살> 시사회에 참석한다고 들었어요.
=그건 약속을 해놓은 거라서.
-시사회에서 영화인들에게 혹시 출마의 변을?
=영화 이야기 해야죠.
-오늘이 정치인 문성근의 첫날 아닌가요.
=연기하는 정치인도 안될 것 없죠.
-<부러진 화살>은 ‘국민의 명령’을 이끌면서 거리에 나서는 동안 출연한 영화인데요.
=석궁 테러 사건에 관한 책이 나와서 읽어봤는데 재밌었어요. 그래서 정지영 감독님께 한번 읽어보시라고 보냈고.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2달 정도 지나서 정 감독님이 이미 김명호 교수를 면회하러 다녀온 거예요. (김 교수를 변론한 박훈) 변호사도 만났고 영화화 판권도 얻고. 처음에는 큰 역을 맡기로 했는데 민란을 주동하는 바람에. (웃음)
-애초 책을 보내면서 큰 역 달라고 ‘딜’을 하신 거 아닌가요.
=(웃음) 아이고, 딜은 무슨. 정 감독님이 그래도 생각해줘서 나중에 연락해줬죠. 판사 맡아달라고, 딱 3일이면 된다고. 그래서 갔는데 돈이 없으니까 세트 촬영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놓은 거예요. 3일 동안 밤 꼴딱 새우면서 찍었어요. 편집본을 보니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요. 이 정도 할 수 있었던 건 극중 방청객으로 나와주신 분들 덕분이에요. 실제 사법 피해자들과 그 재판을 방청한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그분들께 자문을 구하면서 찍었어요. 이럴 때는 판사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인터뷰 보니까 <부러진 화살> 3일을 ‘휴가’라고 표현했던데요.
=국민의 명령쪽에서야 3일 휴가 보내준다고 말하지만, 나야 힘들었죠. 그런데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는 진짜 휴가 같았어요. 바닷가에서 찍었고, 신도 많지 않고, 낮 촬영이 많고, 여유롭게 놀면서 찍었으니까. 공기 좋지, 일정 널널하지. 현장에 가서 하룻밤 자니까 배우가 되어 있더라니까요. 영어로 대사해야 해서 그게 좀 힘들었지만.
-풍문에 따르면, 이자벨 위페르에게 뺨도 맞는다던데.
=나야 홍상수 영화에서 만날 맞잖아요. 그 정도는 약과지. (웃음)
-<부러진 화살>에서도 못된 판사로 나오잖아요. 영화 속 캐릭터의 이미지가 정치인 문성근에게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요.
=유불리에 아무 관심이 없어요. 연기할 때도 그렇고, 운동할 때도 그렇고, 할 일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선거니, 당락이니 이런 걸 털어내야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2002년에 영화계로 돌아와서 한동안 힘들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연기하면서 아까 말한 자유가 느껴졌어요. 행복한 거죠. 행복하니까 그전보다 연기도 훨씬 좋았고. 그런데 그걸 좀 만끽해보려고 했더니만 역사가 이렇게 흘러버리네.
-지난 1년 동안 거리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요.
=와서 붙들고 울어요. 살게 좀 해달라고. 너무 상처를 입은 거죠. 난자당한 거고. 그 울음을 듣고 있으면 안철수 열풍이 이해돼요.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MB의 무한욕망에 경악한 사람들이 성공했지만 부드럽고 온화하고 똑똑한 안철수 교수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죠. 정치라는 게 연애하고 같아요. 안철수 교수한테 맘을 줘버렸다고 해야 하나. 다만 그런 정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제도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에 속하니까. 국민의 명령 이후 1년 동안 우리가 기존 정치권에 끊임없이 요구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에요.
-민주통합당 대표직 선거에 직접 나서게 된 까닭은 뭔가요. 처음부터 예상했는지요.
=처음에 다들 물어봤어요. 노사모 때처럼 끝나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거냐고. 당신 주장이 옳다고 여겨서 열심히 했는데 1년 정도 하고 가버리면 우린 뭐가 되느냐고. 그때마다 이 운동이 성공하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모든 것에 어떤 것까지 포함될지는 예측은 못했죠. 초반에 이창동 감독이 그랬다네요. 난 기억나지 않는데. 결국엔 당 지도부에 출마해야 할 것이라고, 그게 뭔 말이냐면 인생 X됐다는 건데. (웃음) 올해 8월 ‘혁신과 통합’이 출범할 때만 해도 이젠 선수들이 하시겠지 했어요. 이해찬, 문재인, 김두관 세분이 합류하고 시민사회쪽에서도 들어오셨으니까. 그런데 함께하시기로 한 분들이 다들 대선 후보다 보니 결국 내가 출마까지 가겠구나 싶었죠.
-떠밀려서 출사표를 던졌을 것 같진 않은데요.
=국민의 명령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다들 통합에만 관심을 가져요. 갑갑한 건 정치세력간의 통합만 생각한다는 점이죠. 그건 DJ 때부터 하던 통합 아닌가요. 그러다 4·27 재보궐선거, 10·26 서울시장 선거를 거치면서 통합보다 혁신이 먼저라는 우리 주장의 진의가 드러난 것 같아요.
-‘혁신과 통합’이 관철시킨 시민당원제는 정확히 어떤 제도인가요.
=모든 것을 시민이 정한다는 거에요. 당 지도부도 시민이 정하고, 국회의원 선거 공천도 시민이 정하고. 2008년 수십만명의 국민들이 몇달 동안 촛불을 들었는데도 저쪽에선 아무 말도 안 듣잖아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이 됐고, 우리가 다수당이야, 아니꼽냐, 그럼 니들이 이겨라 식이잖아요. 한-미 FTA 때 남경필 의원이 했던 말도 똑같아요. 아니꼬우면 니들이 집권해서 다 바꿔라,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성질이 안 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걸 생각해봐야 해요. 내년 4월에 표로 심판한다고 맘먹어도 정작 야당에서 좋은 후보가 선거에 나오지 못하면 어쩔 거예요. 한나라당과 똑같은 놈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쩔 거예요. 그러니 공천할 때부터 시민들이 들어와서 맘에 드는 후보가 공천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시민당원제는 국민들이 주방에 들어와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에요.
-시민당원제 등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참여정부의 한계에서 비롯됐을 것 같은데요.
=중요한 이슈 때 뛰어나왔다가 본업으로 돌아가버리니까 시민정치운동이 잘 안돼요. 돌아간 뒤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노사모 때만 해도 나 역시 진성당원을 주장했죠. 하지만 지금 대중은 계도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에요. 시민과 정치인간 소통이 자유롭고, 정보량에도 차이가 없어요. 전문성? 정치인들보다 시민들이 더 많이 갖고 있어요. 정치인들은 지역구 관리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고. 이러한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대의제를 바탕으로 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고, 그럴 수 있어요. 언론은 통합민주당 협상 과정에서 전당대회 때의 경선 룰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우리가 무슨 샅바싸움하는 것처럼. 하지만 우린 민주당에 지분 요구를 한 적이 없어요. 대신 시민당원제 등을 통해 다름아닌 광장에 정당을 세우자는 거예요. 벽은 치워버리고 기둥하고 뚜겅만 덮고, 시민들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구조의 정당을 선취하자는 거죠.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서구에서도 골머리 썩고 있는 대의제의 한계를 우리가 먼저 넘어서는 거예요. 그런 형태의 정당이 성공할 때까지는 저도 계속 도와야겠죠.
-민주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우려할 만한 마찰이 있었는데요. 또 진보정당들과의 통합도 이뤄지지 못했고요.
=통합민주당으로 가는 과정이 깔끔하지 못했고, 감동적이지도 못했어요. 자책하고 자탄해요. 1년 전에 내가 시민과 정치권과 사회단체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고, 그래서 건방지게 이 운동을 시작했어요. 1년 동안 많은 사람들 만나서 대화를 하고 나니 내 입장에선 시민당원제에 관해 어느 정도 공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죠. 아까 말했다시피 제 말 중 통합만 듣고 혁신은 듣지 않은 거예요. 이건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니에요. 제안을 한 사람은 저고,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책임은 제가 져야겠죠.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결정되면 통합진보당쪽에는 선거법 개정을 전제로 정당연합을 제안하려고 해요.
-일단 공이 시민에게 넘어간 거네요.
=문을 다 열었고, 제도 역시 바꿨어요. 이 바뀐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민이 시민선거인단으로 들어와야 해요. 안 들어오면 백전백패죠. 직업 정치인들은 사람 동원하는 데 있어 귀신인데. 시민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아예 제도를 안 바꾸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하늘에서 칼질 잘할 수 있는 영웅을 바라는 게 낫지.
-총선에도 출마하나요. 얼마 전, 새벽에 YTN 인터뷰를 봤는데. 출마하느냐는 질문에 웃기만 하던데요.
=1월15일에 지도부가 형성되고 그 안에 들어가면 먼저 희생을 하라, 뭐 이런 주문이 있겠죠. 쉽지 않은 지역으로 나가라 뭐 이런 거. 고민을 해봐야죠.
-곧 60살이 됩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처음으로 투옥되던 시기와도 비슷하죠.
=우연의 일치예요. (웃음) 문목(문익환 목사)은 나중에 그렇게 사시도록 프로그래밍됐던 분이죠. 내 인생하곤 비교가 불가능한 삶인 거죠.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되면 좀더 힘을 쏟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개인적으론 남북관계에도 좀더 많은 관심을 쏟고 싶어요. 문목도,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다 세상을 떠나셨잖아요.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해봐야죠. (문성근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남쪽에 전해졌다.) 아. 근데 영화계 이야기도 할 게 많은데 정치 이야기만 하고 끝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