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한해 영화계를 정리하는 결산 발표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어김없이 바쁘다. 평론가들의 입맛에 맞춘 순위가 속속 발표되는 이때야말로 영화 팬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리스트를 만나는 기간이 아닐까. 매년 2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닌 협회나 미디어, 웹사이트에서 발표하는 순위들은, 후보선정, 투표, 발표까지 홍보나 마케팅 없이 조용히 이루어지고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라 일일이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기 십상이다. 올해 LA지역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이른 연말결산 리스트들을 발표하고 있다. 12월11일, 이창동 감독의 <시>의 윤정희를 2011년 최고의 여배우로 선정한 LA영화평론가협회에 이어 지난 12월22일, <LA위클리>는 <빌리지 보이스>와 공동으로 집계한 2011년 영화계 결산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90명의 온라인, 오프라인 영화평론가들이 보내온 영화 10편의 순위에 1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매겨 산정한 결과다. 순위에 든 영화들을 살펴보니 이미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도 눈에 많이 띈다. 영화의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내 개봉을 기준으로 삼은 순위이기 때문에 <씨네21>의 해외통신원들이 각국에서 보내온 이번호 기획기사와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LA위클리>가 뽑은 2011년 최고의 영화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가 선정됐다. 2위는 아쉬가르 파라디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3위는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가 차지했다. 4위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 5위는 라울 루이즈의 유작이 된 <리스본의 미스터리>, 6위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가 차례로 순위를 이었다. 7위는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과 <LA위클리>의 카리나 롱워스가 입을 모아 수작으로 꼽은 <마가렛>(Margaret)이다. 안나 파킨, 맷 데이먼, 마크 러팔로가 출연하는 <마가렛>은 <유 캔 카운트 온 미>를 연출한 케네스 로너건이 2006년 만든 영화다. 버스사고를 목격한 여자가 사고 이후 겪는 상황과 질문에 대한 드라마다. <마가렛>을 2011년 최고의 영화로 꼽은 롱워스는, 완성된 뒤에도 오랫동안 관객과 만나지 못했던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 일수가 LA나 뉴욕 등 이른바 ‘영화의 도시’들에서조차 손에 꼽히는 수준이라며, 평론가 중에서도 <마가렛>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덧붙여 호기심을 더했다. 8위는 켈리 리처드의 <믹의 지름길>, 9위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 10위는 제프 니콜스의 <테이크 쉘터>가 선정됐다.
<타임아웃 뉴욕>의 평론가인 조슈아 로스코프는 <LA위클리>가 발표한 2011년의 영화 순위와는 별개로, <휴고> <아티스트> <마릴린과의 일주일> 등을 예로 들어 “2011년은 영화를 기념하는 영화들이 되풀이되는 실내악 같은 해”였다고 평했다. 짐 호버먼 역시 <휴고> <슈퍼 에이트> <아티스트>를 열거하며,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포맷을 디지털로 감상?상영하는 데서 오는 아이러니”가 발견되었다고 2011년을 정리했다. 한편 짐 호버먼은 극장 상영작은 아니지만 크리스티안 마클레이의 <The Clock>과 <HBO>에서 제작 방영한 미니시리즈 <밀드레드 피어스>를 순위 외 수작으로 지목했다. <The Clock>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계와 시계를 보는 인물들의 장면들을 발췌하고 편집해 상영시간 24시간 분량으로 만들어낸 비디오아트로 LA 외에도 뉴욕, 보스턴에서 꼬박 하루 동안 상영됐다.
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주연상, 조연상을 여느 순위와 다름없이 선정하는 <LA위클리>의 연말결산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장편영화 데뷔작 부문이다. 이 부문의 1위로 엘리자베스 올슨이 주연한 스릴러 <마사 마시 메이 말린>이 선정됐다. 숀 더킨의 데뷔작인 <마사 마시 메이 말린>은 개봉 당시에 평단과 대중의 고른 호평을 얻은 바 있다. 2위는 에반 클로델의 <벨플라워>, 3위는 조 코니시의 <어택 더 블록>, 4위는 J. C. 찬도르의 <마진 콜>, 그리고 5위는 클리오 바나드의 <The Arbor>가 차지했다.
이같은 리스트들을 토대로 사람들은 오스카 수상작들을 예상해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명 시상식에서 만나기 힘든 독립영화들을 발견하는 데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LA영화평론가협회는 2011년 투표결과를 발표하며, “지난해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에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여했지만 오스카는 <킹스 스피치>의 손을 들어주었다”며, 자신들의 리스트가 가지는 차별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