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2년 3월17일까지
장소: 한미사진미술관 19층
문의: 02-418-1315
“행복이 뭔 줄 아세요? 행복은 새차의 냄새이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당신이 뭘 하든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도로변의 커다란 전광판이에요.” 미국 드라마 <매드맨>의 유능한 광고맨, 돈 드레이퍼가 설파하는 광고의 본질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담배는 암을 유발시키는 유해한 기호품이 아니라 노스 캐롤라이나의 햇빛을 받으며 노릇하게 잘 구워진, 매력적인 상품이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그 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건 온전히 광고맨들의 임무다. 광고를 보는 이들이 지갑을 열도록 밤잠 설치며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는 게 광고쟁이들의 역할이라면, 그들의 아이디어를 매혹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건 사진가들의 몫이다.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그 역할을 했던 이가 광고사진가 김한용이다.
김한용은 1959년 한국 최초의 광고사진 스튜디오 ‘김한용 사진연구소’를 연 사진가다. 60년 대는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만이 콜라와 맥주를 마실 수 있었던 시대다. 김한용의 임무는 막걸리를 마시던 사람이 맥주를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막걸리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그는 김지미, 최무룡, 엄앵란, 신성일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에게 맥주를 들게 했다. 제품의 청량함을 표현하기 위해 니스로 물방울을 만들고, 테이블엔 각양각색의 안주를 먹음직스럽게 늘어놓았다. 사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가 제작한 OB맥주, 오란씨, 코카콜라, 쥬단학 화장품 광고는 당대 배우들의 스타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고 재래시장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던 사람들은 점차 기호와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소비’하게 되었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내년 3월까지 열리는 김한용 사진작가의 전시 부제가 ‘광고사진과 소비자의 탄생’인 까닭도 그가 소비의 시대를 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한용의 1960~70년대 작품 93점이 소개된다. 입에 딱딱 붙는 CM송, 최첨단 시각효과와 사진 장비 없이 촬영된 사진임에도 김한용의 작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몸에 칼이라곤 대지 않은 배우들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하고, 통통 튀는 총천연색 배경은 광고의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아날로그적 감수성, 복고풍을 컨셉으로 하는 광고들을 종종 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진짜 빈티지는 순수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김한용의 사진은 일깨워준다. 최무룡, 김지미, 임권택 감독의 부인으로 잘 알려진 채령 여사의 젊은 시절을 엿보는 즐거움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