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타카>는 드라마와 스타일 모두가 기억나는 흔치 않은 영화다. 유전적으로 선택된(=조작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몇몇만 뽑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보내는 우주프로그램에 유전적으로 열성인(즉 자연 태생인) ‘부적격자’가 은밀히 지원한다는 것이 전체 이야기의 골자다. 그러면서 좌절과 희망, 도전, 우정, 희생, 사랑, 기만 등 일반적인 공상과학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주제들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주제들이 장소적 배경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건축가가 보기에 이 영화는 건축을 매우 잘 읽는 사람이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우주 프로그램의 본부인 가타카로 등장하는 건물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년작이자 유작인 마린 카운티 시빅 센터다. 그의 작품 연보에서 가장 뒤에 위치하며 동시에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건물은 라이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그리 자주 거론되지는 않는다. 넓은 대지에 수평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평소 대평원의 지평선을 흠모했던 그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건물 구석구석의 스케일 편차가 심하고 완만한 아치들이 중첩된 조형방식 또한 뭔가 어색하다.
하지만 영화는 건물의 이러한 특징을 고스란히 영화의 내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정 시대의 특정 지역과 연관시킬 수 없는 그 외계적 느낌이라든지 크고 작은 공간의 교직, 그리고 천창을 통해 보이는 우주선의 발사 궤적 등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상투적 공상과학의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공상과학적 리얼리티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타이탄으로 발사되는 그 순간에도 우주인들은 우주복이 아닌 칼같이 다린 정장 슈트를 입고 있다. 언뜻 들으면 완전히 실패할 설정일 듯하지만 오히려 영화의 성격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건축과 영화와 스타일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단 하나의 예를 꼽으라면 단연 <가타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