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거나 정겹거나. 친숙하거나 낯설거나. 그녀를 보면 두 단어가 동시에 떠오른다. 만 20년 동안 수없이 가면을 갈아치워온 그녀는 대중을 상대로 기묘한 거리감을 형성해왔다. 최근 몇년만 돌아봐도 그렇다. 아방가르드 룩을 선보이며 자기보다 스무살쯤 어린 남자 아이돌과 <D.I.S.C.O>를 들고 나왔을 때 그녀는 현실보다 먼 곳에서 당도한 미지의 생물체 같았다. 반면 전작 <마마>에서 푸근한 몸매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며 자식을 품에 끼고 도는 억척어미로 분했던 그녀는 현실법칙에 옴짝달싹 못하는 평범한 아줌마였다. 파격적인 무대의상도 자기 피부처럼 소화해내는 관록의 여가수. 민낯과 군살로 연기의 디테일을 채우는 허물없는 여배우. 그 사이를 신속히 오가는 엄정화는 여전히 변신의 희열을 대리 경험케 해주는 몇 안되는 스타 중 하나다.
그 엄정화가 이번에는 바로 엄정화 자신으로 분했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가정주부가 <슈퍼스타 K>를 거쳐 ‘성인돌’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댄싱퀸>은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2009)를 찍고 있을 때부터 그녀만을 염두에 두고 계획한 프로젝트였다. 그녀에게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가수 겸업 배우 혹은 배우 겸업 가수 엄정화를 마음껏 투영할 수 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색은 곧 근심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걱정은 너무 가수 엄정화같이 보이는 일이었다. 이는 데뷔 이래 그녀가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주말 드라마와 가수로 <배반의 장미> 무대를 동시에 뛰었던 때가 있었어요. 시청자에게 두 사람이 비슷해 보이면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배역 이름을 달고 있는 엄정화와 무대 위의 엄정화가 완전히 달라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가수로서의 재미과 배우로서의 재미도 명확하게 구분했다. “노래할 때는 제 속의 흥이 확산되는 것을 느끼는 쾌감이 있다면 연기할 때는 제가 이입하는 캐릭터의 감정과 ‘딱’ 만나는 기쁨이 있어요.” 그래서 <댄싱퀸>의 엄정화는 데뷔 무대에서 ‘어떤 감격을 느끼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가수로서는 제가 부르는 노래 안에서만 연기하면 되는데 영화에서는 드디어 생방송 무대에 섰다는 흥분, 남편이 자신을 알아볼까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다 표현해야 하니까요.” 익숙한 동작도 다시 따져봤다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순정을 듣고 있자니 그녀가 투과해낸 또 다른 엄정화가 “너무 애달프고 찡했”다는 황정민의 말도 과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진심에 찡해질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녀에게 <댄싱퀸>은 갑상선암 투병을 끝내고 처음으로 맡은 유쾌하고 가벼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가벼움’을 그녀는 유독 즐거운 촬영이었다며 “감사히” 여겼다. “이 시간을 채워나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 감정들이 고마워요. 내 인생이 여기 다 들어 있잖아요.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녀는 본능을 억누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움직여봤던 모양이다. “황정민하고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서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더라고요. 신나서 마구 때렸어요. (웃음) 그러다 마지막에 두 사람의 감정이 만나는 순간에는 같이 막 울었어요.” 고비를 넘기며 배우로서의 열망도 더 커진 모양이었다. “갈수록 내가 연기를 제대로 알고 있나 하는 물음이 생겨요. 아직 더 가야죠.” 그녀 안에 공생 중인 여러 명의 엄정화가 이미 다음 드라마, 다음 영화, 다음 음반을 기다리며 꿈틀거리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