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은 과연 화제작다웠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올해 부산의 최고 발견”이라는 소문을 모았던 것처럼 도발적이고 논쟁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초반부가 좀 느슨하고 산만한 느낌이어서 부산에서 이 영화를 보고 극찬했던 강병진을 저주했지만, 이야기가 풀려나감에 따라 흥미진진해졌고 종반부에는 넋이 빠진 채 보게 됐다. 고지식하고 직선적인 주인공 김경호 교수를 연기한 안성기, 어딘가 느물느물한 변호사를 연기한 박원상, 오랜만에 카리스마를 선보인 나영희, 그리고 ‘골통보수’ 판사를 연기한 문성근 등 배우의 앙상블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지점에는 정지영 감독이 있었다. 그 특유의 굵고 힘찬 연출 스타일이 드러나면서도 캐릭터 사이의 균형감이 좋았고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텔링이 돋보였다. 1988년 할리우드 직배 반대 투쟁으로 시작해 영화진흥법 개정 투쟁,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에 이르기까지 영화계의 온갖 ‘투쟁’에 앞장서왔던 반항적 기질 또한 묻어나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일컬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관록’이나 ‘경륜’ 또는 ‘공력’ 같은 단어이리라.
정지영 감독은 충무로에서 이른바 ‘노장’으로 분류된다. 1946년생으로 60대 중반이고 70년대부터 김수용 감독의 연출부로 활약한 뒤 1982년 입봉한 그이니 ‘노장’이라는 칭호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의 육체적 나이가 작품의 신선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0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마뇰 드 올리베이라를 논외로 해도 시드니 루멧은 83살에 걸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를 만들었고 스즈키 세이준은 82살에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장 뤽 고다르는 80살에 <필름 소셜리즘>을 만들었(고 지금도 새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가깝게는 75살에 <달빛 길어올리기>를 만든 임권택 감독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정지영 감독을 ‘노장’으로 부르는 건 섣부른 일이다. 게다가 그사이 다큐멘터리 <아리 아리 한국영화>와 옴니버스영화 <마스터클래스의 산책> 중 한편인 <이헌 기자의 하루>라는 단편영화까지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는 지난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1998년 <까> 이후)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던 사이 나랑 동년배였던 감독들이 다들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서 나 역시 어느새 옛날 감독이 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현재 영화계가 오랜 경륜을 가진 감독들을 피한다는 얘기일 것. 제작자나 투자자는 이들이 상대하기 어려운데다 퀴퀴한 감각을 가졌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듯한데 <부러진 화살>을 보면 그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사 입장에서도 젊지만 구태의연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보다는 나이가 들었을지언정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관록이 풍부한 감독이 훨씬 낫지 않을까. 마음 젊은 모든 감독들께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