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신이라 불린 사나이
2012-01-11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글 : 신두영
데즈카 오사무 애니메이션영화제 1월13일부터 22일까지 씨네코드 선재에서
<우주소년 아톰> (c)Tezuka Productions

일본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 단지 핏줄을 이어주고 생활의 기반을 잡은 아버지 정도로는 부족하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모든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할 정도다. 건물로 따지면,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고 건물을 세운 것은 물론 수백년 동안 확장공사를 할 수 있는 도면까지 이미 설계해놨다고나 할까. SF만화 <우주소년 아톰>, 의학만화 <블랙잭>, 종교만화 <붓다>, 정치만화 <아돌프에게 고한다>, 닌자만화 <도로로>, 공포만화 <뱀파이어>, 추리만화 <낙반> 등 모든 장르의 만화를 망라한 동시에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리본의 기사>, 지독한 악녀를 창조해낸 <인간 곤충기>, 의학계를 고발한 <키리히토 찬가>, 미국과 정부의 음모론을 파헤치는 <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판타지 <불새> 등 데즈카 오사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만화로 재창조했다.

그리고 만화에 만족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에도 뛰어들었다. 1962년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한 데즈카 오사무는 1963년 <우주소년 아톰>의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일본의 첫 TV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은 총 193회 방영되었고 시청률은 무려 40%에 달했다. 데즈카는 쉬지 않고 달려 1965년에는 첫 컬러TV애니메이션인 <정글 대제>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밀림의 왕자 레오>로 알려진 <정글 대제>는 이후 디즈니의 <라이온 킹>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단순한 표절이나 오마주를 뛰어넘는다. 이를테면 서구의 SF와 <블레이드 러너>에 열광했던 오시이 마모루와 오토모 가쓰히로가 <공각기동대>와 <아키라>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를 만드는 데 공헌한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문화와 예술은 확장되고 진보한다.

일본 만화계에 큰 영향 끼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창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고유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생의 과업이었다. <우주소년 아톰>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적은 게 문제였다. 고심하던 데즈카 오사무는 획기적인 제작비 절감 방안을 고안했다. 1초 24프레임의 그림을 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절반 혹은 1/3 정도의 그림만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을 창안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부드러운 표정 등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라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만화처럼 한순간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역동적인 연출기법으로 ‘액션’의 기운을 잡아냈다. 즉 데즈카 오사무는 적은 수의 그림을 가지고 어떻게 운동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찾아내는 연출 방안을 제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렴한 제작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B급영화들이 때로 극도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처럼, 데즈카 오사무가 창안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후 <내일의 죠>의 데자키 오사무가 정지화면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안노 히데아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도입하고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서 만개시킨 자막과 효과음의 주도적인 화면 연출도 결국은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한계에서 파생된 도발적인 미학이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후일 일본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공헌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구조 자체를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공식적으로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망쳤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TV애니메이션 방영 자체에서 수익을 올리기는 거의 힘들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저임금 체제가 여전히 지속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점점 게임 산업에 자금과 인력을 뺏기면서, 현재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심각한 정체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즈카 오사무는 여전히 신이라 불릴 수밖에 없다. 열악한 환경을 만들어냈지만, 그 안에서 또한 최선의 결과물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의사 일을 하면서도 1년에 10여편의 만화를 그리고, 매일같이 영화를 한편 이상 봤던 데즈카 오사무는 그야말로 초인이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즐겁고, 열정에 차서 했던 일들이다. 오죽하면 과로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자마자 내뱉은 말이 ‘제발 부탁이니까 일을 하게 해줘’였겠는가. 데즈카 오사무는 결코 자신의 성공에 도취하지 않았다. <우주소년 아톰>과 <정글 대제>를 성공시키면서도 데즈카는 변함없이 미지의 신세계로 진입했다. 상업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도 예술적인 실험애니메이션을 병행한 것이다. 1963년에 만든 <어느 골목 이야기>로 블루리본 교육문화영화상 등을 수상한 이후 베니스국제영화제 마르코 은사자상을 받은 <전람회의 그림>(1967)을 비롯해 <점핑>(1984), <망가진 필름>(1985), <숲의 전설>(1988) 등 예술적인 애니메이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정글 대제> (c)Tezuka Productions

사그라지지 않았던 무한대의 호기심과 열정

데즈카 오사무의 열정은 어떠한 순간에도 바래지 않았다. 데즈카가 아톰의 캐릭터를 떠올린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패전 뒤 들어온 미군에 비해 일본인은 늘 위축되어 보이고 체격도 왜소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부러 아톰을 조그만 로봇으로 설정하고, 체격은 작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미군과 일본인의 관계였다. 언어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미군과 일본인 사이에는 본질적인 단절이 있었다. 특히 미군이 폭력을 휘두를 때에도 일본인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아톰이 인간과 로봇,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중간자, 통역자로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데즈카 오사무는 아톰을 ‘평화의 대사’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주소년 아톰>은 미국에 수출되어 <아스트로 보이>란 제목으로 인기를 끌었다. 데즈카가 꿈꾸었던 미국과 일본의 ‘소통’을 아톰이 이루어준 격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급격하게 시대가 변해도, 새로운 사회와 독자들의 기호와 취향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작품에 반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이토 다카오, 시라토 산페이 등의 극화체가 인기를 끌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독자의 비판을 받은 데즈카 오사무는 별거 아니라고 비난하면서도 끊임없이 ‘극화’를 공부했다. 극화가 실리던 만화잡지를 엄청나게 탐독하고, 극화체의 그림을 수없이 연습했다. 그리고 자신의 만화를 봤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볼 수 있는, 어른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들도 그려냈다. <인간 곤충기> <뮤> <불새> 등은 동글동글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성인만화였다.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만화에서도 단지 즐거움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가볍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야말로 데즈카 오사무가 거부한 편견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언제나 ‘아이들은 진지한 메시지를 원한다’고 생각했고, 작품에 담아냈다. 데즈카는 언제나 자신을 의심하고, 무한대의 호기심과 열정으로 신세계를 창조해낸 열정의 신이었다.

아톰, 레오, 블랙잭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다

1월13일부터 22일까지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리는 데즈카 오사무 애니메이션영화제(127쪽 게시판 참조)의 상영작은 데즈카 오사무의 세계 전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의 CF에 등장하고, 어딘가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최고의 캐릭터들인 아톰과 레오, 블랙잭을 만나보는 일은 변함없이 즐겁다. 데즈카 오사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천재였다. <천일야화>와 <클레오파트라>는 동서양의 고전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던 데즈카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데즈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만화로 그리기도 했고, <천일야화> 같은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을 보였다. 데즈카의 관심에서 벗어난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람회의 그림>을 비롯한 단편들에서도 데즈카 오사무라는 신의 또 다른 손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1980년 라스베이거스영화제 동화부문상을 받은 <불새 2772>가 없다는 것이다. 그걸 본다고 해서 데즈카 오사무의 전부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원작인 만화 <불새>는 자신의 ‘생애를 걸고 그린 최대의 역작’이라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불의 산에 산다는 불사조인 불새의 생피를 마신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불새>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고대와 현대, 미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개그와 장엄한 드라마, 때로는 실험적인 묘사까지 과감하게 펼쳐나가면서 인간의 삶과 함께 모든 생명의 의미 같은 철학적인 문제까지 폭넓게 파고든다. 그런 작품을 스크린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c)TEZUKA PRODUCTION

국내 미공개 작품 등 500여점 전시

데즈카 오사무 특별전’ 마련한 제2회 국제만화예술축제

이번 데즈카 오사무 애니메이션영화제는 제2회 국제만화예술축제(International Cartoon & Art Festival, 이하 아이카페(ICAFE))의 메인 초청전인 ‘데즈카 오사무 특별전: 아톰의 꿈’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다. 지난해 12월21일에 개막한 아이카페는 4월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미술관과 갤러리 누리에서 개최된다. 데즈카 오사무 특별전에서는 1970, 80년대 TV애니메이션으로 절찬리에 방영된 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우주소년 아톰>(원제: <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원제: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원제: <정글 대제>)와 같은 대표작뿐만 아니라 국내에 미공개되었던 작품들의 원화와 습작 노트, 사료, 출판물 등 500여 작품이 전시된다. 데즈카 오사무는 천재임에도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귀가하고, 하루 평균 3~4시간만 자면서 만화를 그렸다. 천재이자 동시에 노력파이기도 한 데즈카 오사무는 평생 15만장의 만화 원고를 작업했고, 700여편의 만화, 60여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전 시기를 통사적으로 살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오마주 구역에서는 현대미술 작가인 백종기, 찰스장, 이하, 마리킴, 양재영 등이 데즈카 오사무의 주요 캐릭터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전시한다. 한편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는 박인하 등 젊은 만화연구가들이 공동 집필한 데즈카 오사무의 연구서도 특별전을 기념해 출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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