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신화가 되는 영화가 있다. <원스>가 그랬다. 2007년 선댄스가 선택한 이 작은 음악영화는 셀 수 없는 수상 명단을 자랑하며, 평단과 관객에게 만족을 안겨줬다. 끊임없이 성공 요인이 분석됐다. 거창한 스토리도, 극적 장치도 없는 뮤지션의 사랑 이야기. 고작 고장난 전기청소기로 이룬 이 사랑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기도 전에 <원스>는 이미 스크린을 벗어나 있었다. 아일랜드의 거리가, <Falling Slowly>의 고독한 선율이, 두 뮤지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이 모든 것이 영화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되어 있었다.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의 ‘진짜 연애’가 이 분위기에 일조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원스 어게인>은 아예 스크린 밖으로 비집고 나온 두 연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다큐멘터리다. 일종의 ‘원스: 그 뒤 버전’쯤의 부제를 붙이면 좋을 것 같다. 3명의 공동감독이 참여했는데, 그중 한명인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가 2007년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강의를 했었고, 그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했던 글렌 한사드가 투어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시작은 그랬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글렌과 마르케타가 영화가 끝난 직후 결성한 밴드 ‘스웰 시즌’의 월드투어 버스에 함께 오르게 됐다. 공연 실황과 백스테이지를 충실히 기록하고, 전세계에 퍼진 <원스> 팬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또 한편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나쁠 게 없는 선택처럼 보였다.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영화는 애초 기획 의도와 완전히 동떨어져버린 게 확실해 보인다. <원스 어게인>은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식의 결론을 내리는 미담이 아니다. 막상 백스테이지 출입권을 받고 들어가서 보니 이곳이 성공을 자축하고 마냥 행복에 겨운 채로 유지되는 환상의 공간은 아니었단 말이다. 갑작스런 성공과 유명세가 준 부작용은 <원스>의 그들에게 짐이 되었다. 유명세를 타기 이전 실패와 상관없이 이뤄지던 작업은 글렌에게 세상의 기대와 시선을 피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18살에 불과한 마르게타에게 팬들의 관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단적으로 영화엔 글렌의 부모가 등장하는데, 노동자인 글렌의 엄마는 아들이 오스카 수상자, 유명인이라는 사실이 자랑거리이자 마냥 뿌듯하기만 하다. 매번의 인터뷰 영상에서 오스카 수상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엄마는 결국 그 문제로 글렌과 말다툼을 하고 반목하게 된다. 3년여 이들을 따라다녔다는 카메라에는 이같은 혼란과 신경전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원스>의 장면 모두가 둘의 사랑을 구축하는 재료로 쓰였다면, <원스 어게인>의 대사 하나하나는 반대로 이들의 관계를 허무는 도구 역할을 한다. <원스>가 사랑 노래였다면, <원스 어게인>은 이별 노래인 셈이다. 이미 (실제로는) 그들의 사랑이 끝난 걸 아는 팬들이, 그들의 사랑이 파국을 향해가는 걸 스크린에서 지켜보는 독특한 경험이다. 글렌과 마르게타가 일상적인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영화 초반, 잠깐뿐이다. 글렌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잘라주고, 함께 나체로 바닷가로 뛰어드는 순간이 포착되는 행복의 순간 이후, 둘은 끊임없는 말다툼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바쁘다. 이별의 순간도 그리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진 않는다. 둘은 작정하고 결론을 내리는 대신, 카페에서의 대화로 갑자기 툭 하고 쌓아뒀던 자신들의 감정을 터뜨린다. 가공된 게 아닌 진짜 ‘이별’이라 지켜보는 데도 가슴이 뜨끔할 지경이다. <원스>의 가사 하나하나가 주었던 감흥이, 이제 헤어짐의 노랫말로 치환된다.
카메라는 공연과 무대 밖을 오가지만 <원스 어게인>의 모든 공간은 마치 하나처럼 자연스럽게 싱크된다. 영화 전체를 흑백으로 촬영함으로써 통일을 준 결과가 첫 번째 이유, 노래가 곧 자신들의 생활에서 나오는 밴드 ‘스웰 시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 또 다른 이유로 보인다. 관객에겐 이제 <원스>의 그들이 전하는 날것의 모습과 이별 과정을 보는 게 합법적으로 허락됐다. 사뭇 씁쓸하지만, 얼른 그 자리에 헤어짐을 노래한 스웰 시즌의 두 번째 음반 ≪Strict Joy≫의 공연을 보는 듯한 감흥이 들어선다. <원스 어게인>은 끝이라기보단 그래서 <원스>의 또 다른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