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CGV압구정에서, 무비꼴라쥬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씨네톡 행사를 진행하는 평론가들이 모두 모여 대담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인 남인영 동서대 교수가 가장 힘을 줘 절찬한 영화가 최근 개봉한 <Jam Docu 강정>이었다. 옆에서 그의 얘기를 듣다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여덟명의 감독이 100일 동안 각자의 컨셉으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형식이 전혀 다른 여덟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평이한 것도 있고 색다른 것도 있지만 모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편에 서서 찍은 것이다.
참신한 시도 돋보이는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
볼 때는 쓸데없는 장난처럼 보였던 작품인데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최진성이 연출한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었다. 항공모함에 타고 싶어서 해군에 자원입대했다는 그는 지금도 항공모함 모형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다. 이 에피소드가 시작하면 남대문시장에서 그가 항공모함 모형을 사서 조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물신적 매혹에의 집착 때문에 그의 내면은 분열돼 있거나 스스로 괴로워하는 듯이 보인다. 그는 강정마을에 가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성거린다. 서성거린다, 라는 표현밖에는 쓸 게 없는 것이 그는 거기서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담이 쳐진 해군기지 건설현장 바깥에서 담을 타고 현장 관계자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최하동하 감독을 밑에서 지켜보던 그는 평화를 희구하는 낙서를 적은 작은 군함 모형을 최하동하 감독에게 준 뒤 그걸 현장관리 책임자인 대령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다들 심각한데 혼자 희희낙락한 그의 행동은 시답지 않은 장난처럼 보인다.
강정마을 현지의 중국음식점에 가서도 최진성은 비슷한 취미를 지닌 사장님이자 주방장님과 친해진 듯이 보인다. 그런 게 어쨌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최진성은 ‘국제무정부주의동맹’ 주최로 집회를 열고 소규모 밴드가 악악대며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별다른 의미없어 보이는 퍼포먼스를 한다. 위병이 근무 서는 정문 근처로 곧잘 다가가다가 그곳 군인들의 제지를 받기도 하지만 비를 맞으며 열심히 뭔가를 주장하려는 듯 시위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문 근처에 앉아서 군함모형의 부속을 맞추려고 애쓰는 최진성 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다. <Jam Docu 강정>에서 유일하게 그는 강정마을 사태와 대면한 자신의 입장을 찍었다. 군사문화의 물신에 매혹되어 즐기고 싶지만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며 계속 그 분열의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여준다. 간간이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까지 이어지는 한-미 합동군사작전의 기록필름이 인터컷되면서 이런 길티 플레저의 죄의식은 광기 비슷한 언저리 경계에서 멈추는 듯하다. 용산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내면서 국제무정부주의동맹 운운하는 감독 자신의 중얼거림은 웃기다고도, 슬프다고도 말하기 힘들다.
좀 혼란스럽고 못 만들긴 했으나 필자 개인의 입장에선 최진성의 이런 시도가 가장 참신해 보였다. 정언으로 다가오는 강정마을 사태에 대한 지식인의 입장은 물론 해군기지 건설 반대겠지만 그 정언이 실천되지 못하는 현실 앞에 마주친 당혹감을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 극적으로 풍자하는 듯이 보였다. <Jam Docu 강정>의 다른 에피소드들은 필자 같은 관객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직설은 아니지만 사태의 안과 바깥을 다양하게 비춰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홍형숙 감독의 <구럼비에 멈춰서서>에 등장하는 평화운동가 최성희씨는 감옥으로 자신을 면회 온 친구를 맞아 밝게 웃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동북아 평화에 직접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지역이슈가 아니라 전 지구적 이슈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활동가의 너른 인식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내적 평안이 흔들림없어 보이는 그의 헌신이 대단해 보였다. <구럼비에 멈춰서서>에서 가장 진한 정서적 감동을 주는 장면도 성미산 공연에서 친구가 최성희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때다.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이런 입장을 존경하지만 일방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Jam Docu 강정>이 100일 동안의 제작 프로젝트로서 갖는 근원적 한계, 바깥에서 들여다본 관점이라는 게 일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순 감독이 연출한 첫 에피소드인 <안녕 구럼비>에서 강정균 마을회장이 반대운동을 도우러 온 외지 사람들을 환영하면서 마을의 공동체를 일컫는 ‘권당’ 전통이 산산조각났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추상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고향마을에 흉물스런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문제로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섰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와 지역 토호들이 부추기는 개발담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지피고 이웃사촌과 형제자매도 원수로 만든다. 이들의 내부문제를 파고드는 쪽은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마을의 기억>과 최하동하 감독의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다. <마을의 기억>은 지나치게 신중한 접근으로 제작기간 부족이라는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드러내면서 슬쩍 스쳐지나가는 분량이지만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는 다르다.
강정 사람들의 표정 인상깊게 담은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람들이 갈려서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하는 마을의 현실은 같은 길목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가게를 축으로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최하동하 감독이 무던히 양방의 입장을 들어보려 애를 쓴 것은 화면에 분명히 드러난다. 찬성하는 쪽은 말을 꺼리고 반대하는 쪽은 그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속내를 더 털어놓지만 역시 말을 가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흥미로웠다. 선과 당위의 문제를 떠나서 강정마을은 바깥으로부터의 외풍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쪽은 재빠르게 선제조치를 했고 활동가들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편에 서서 한때 열심히 활동했던 강희웅씨는 명절 때도 친지를 만나지 않고 자신의 화훼농장에서 일한다며 찬성운동을 이끄는 형 강희상씨와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누구보다 존경했던 친형과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사는 지옥 같은 삶의 속내에 대해 그 역시 깊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요즘은 반대운동에서 물러나 관망하는 듯이 보이는 그는 외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막을 수 있는 기회엔 안 왔잖아요? 왜 지금 오셨습니까?”
<코사마트와 나들가게>에 나오는 강정마을 사람들의 표정과 말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 깊다. 그들의 곁에서 망설이며 더 다가서고 싶지만 다가설 수 없는 외지인의 입장을 겸손하게 자각하면서 그들의 고통을 받아보겠다는 감독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곳에 간 활동가들의 모습이 대체로 활기차고 뭔가 해보겠다는 결기가 있는 반면에 피곤하고 시큰둥하며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속내를 비추는 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자본과 권력이 쌍갈래로 압박하고 포위해 들어오는 개발담론에 우리 사회 대다수는 백기 투항했다. 타의에 의한 것도 있으나 자발적인 요인도 많았다. 이 모든 것은 너무 뒤늦게 깨달음이 온다. 구성원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재앙의 흔적에 관해, 그것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상식이 피로로 마모되고 퇴색하는 것에 관해, 최하동하의 <코사마트와 나들가게>는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적지 않은 걸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몇편의 다큐멘터리를 연달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타인의 고통의 주름 잡힌 결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걸 또 평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절감한다. 나는 <Jam Docu 강정>에서 신념을 갖고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연대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조심스럽게 껴안으려고 하는 창작자들의 자세가 존경스러웠다. 마음이 더 동하는 건 후자쪽이다.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았으나 이쪽 사람들의 삶을 부수고 밀고 들어오는 자본과 권력을 쥔 세력의 기세, 그것에 대응하는 필부들의 욕망과 저항에 대해서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