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추락할 권력을 위하여
2012-01-20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켈시 그래머(왼쪽)

연말이면 미국 TV시리즈들은 특별 편성된 프로그램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휴방과 재방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맞춰 드라마들은 한 시즌을 종료하기도 하는데, 2011년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두편이 최근 첫 시즌의 막을 내렸다. 한편은 <씨네21> 827호 ‘미드의 역습’에 소개된 <홈랜드>(<쇼타임>)이고, 다른 한편은 이번에 소개하려는 <보스>(<스타즈>)다. 두 드라마 모두 고른 호평과 시청률을 기록해 2012년 시즌2 방영을 예정한 상태다.

<보스>는 <스파르타쿠스> 시리즈와 <카멜롯> 등의 오리지널 TV시리즈를 제작한 케이블 채널 <스타즈>에서 기획한 야심작으로, <스타즈>를 <HBO> <쇼타임> <FX> <AMC> 등의 케이블 채널들의 경쟁자로 급부상시킨 주역이다. 파일럿은 시카고시의 시장인 톰 케인(켈시 그래머)이 “알츠하이머와 파킨슨씨병과 유사한” 루이 소체 치매로 진단받으며 시작한다. 늦어도 5년 안에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사의 말에, 사임은커녕 재선의 투지를 불사르는 케인을 두고 미국 언론은 <리어 왕>과 <시민 케인>(우연히 ‘케인’이라는 이름도 같다)에 종종 비유하는데, 그를 움직이는 것이 오직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추구이며, 생존의 투지 또한 권력이라는 점 때문이리라. <보스> 시즌1은 일리노이주 주지사 선거를 3주 앞둔 시점부터 주지사 선거 당일까지를 보여주고, 그 3주 동안 현 주지사인 맥콜 컬린, 케인이 주지사를 견제하기 위해 발탁한 새로운 후보 벤 제이작, 케인의 부인이자 전 시장의 딸인 메러디스 케인 등의 주변 인물들이 차기 권좌의 주인을 예상하며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과 일간지 기자 샘 밀러의 추적이 긴박하게 그려진다. 타이틀이 <보스>이니만큼 그 중심에는 톰 케인이 있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발작, 언어상실, 한밤중에 이불을 적시고 일어나는 등 치매의 증상을 홀로 감내하는 그는 애처롭기보다는 두려운 존재로 그려진다. 소원한 딸과 부인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때 언뜻 인간적인 슬픔이 스치는 듯해도 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다면 부인이라고 해도 잘라낼 위인이며,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하나뿐인 딸의 약점마저도 이용할 독종이기도 하다. 그는 권력 그 자체다.

시한부 인생 진단으로 시작해, 부패한 사회를 그려내는 <보스>를 보고 <브레이킹 배드>의 브라이언 크랜스턴을 언뜻 떠올렸는데, 주연배우인 켈시 그래머(사진 왼쪽)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그 기시감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켈시 그래머는 <보스> 이전까지는 시트콤 <프레이저>로 안방극장에 웃음을 전달하며 11년을 보낸 코미디 배우였다. ‘슬레이트 매거진’이 “켈시 그래머가 자신만의 <브레이킹 배드>를 찾았다”고 내린 촌평은 시트콤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180도 변화시킨, 두 배우의 역량과 변신에 근거한다. 케이블 채널에서만 가능한 거친 폭력과 대담한 노출, 드라마의 완성도 역시 <브레이킹 배드>와의 비교를 재촉한다. 드라마의 첫편은,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린 감독 구스 반 산트가 연출했는데, 시즌1의 총 8편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훌륭하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장면 이전에 대사가 먼저 나오는 등의 편집방식은 다음에도 반복되지만, 파일럿만큼 인상적이지는 않다.

<보스>는 시카고의 현재를 배경으로 하지만 권력을 향한 정치인들의 암투, 범법행위, 폭력 등 정치판을 그려내는 방식은 고전적이다. 시즌1이 시카고의 ‘리어 왕’이 재선을 위해 주변을 다지는 극단적인 과정을 그려냈다면, 시즌2에서는 그 추악한 진실이 기자 샘 밀러를 통해서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된다. 추락이 의미있으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법. 오프닝 타이틀을 따라 흐르는 노래의 “Satan, your kingdom must come down”이라는 가사는 예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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