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전화 수화기에 고집스럽게 귀를 대고 있다. 그는 결번을 알리는 신호음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시 뒤 소년은 보육원 선생님과 몸싸움을 벌인 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카메라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흔들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리듬, 다르덴 형제의 영화다. 다르덴의 인물들은 주로 생존문제 때문에 일상의 혈투를 벌인다. 그리고 그 혈투의 한가운데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아마도 이 소년은 처음부터 생존이 아닌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거의 유일한 다르덴의 인물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자전거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토마 도레)의 슬픔과 절망을 각별히 지켜보도록 만든다. 시릴은 소식이 끊긴 아빠(제레미 레니에)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자주 보육원에서 도망친다. 그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릴은 우연히 미용실 주인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를 만나고, 그녀는 시릴의 주말 위탁모가 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놓지 못하고 자꾸 엇나간다.
<자전거 탄 소년>은 다르덴의 전작들에 비해 한결 친절하며 따뜻한 작품이다. 그러나 음악을 비롯한 몇 가지 형식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정을 생략하고 특정 디테일을 연장해서 보여주는 감독 특유의 호흡과 인물의 현존을 사유하는 핸드헬드 카메라, 그리고 냉혹한 현실에서 분투하는 인물을 보듬는 시선은 그대로 이어진다. <로나의 침묵>이 감독의 매너리즘을 의심케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그 의혹을 유유히 통과해가는지 보여준다. 자전거가 주는 속도감과 토마 도레의 훌륭한 연기도 영화에 매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