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메이커>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과 <국가대표>(2009) 이후 지난해의 <글러브>와 <퍼펙트 게임> 등 이른바 ‘스포츠 휴먼 드라마’의 연장선에 있다. 굳이 그것이 실화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쓰러져도 그라운드 위에서 쓰러진다’ 혹은 ‘선수 생명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나는 꼭 끝까지 달릴 거야’류의 투혼의 스포츠영화다. 그런 가운데 빚에 시달리는 선수의 모습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자선수들끼리 갈등하고 화해하는 팀 분위기는 <국가대표>, 그리고 어딘가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마라토너의 모습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페이스 메이커>는 마라톤을 중심에 놓고 기존 스포츠영화들의 공식들을 영리하게 벤치마킹하는 전략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커스는 김명민의 영화라는 점이다. 홀로 버티고 선 ‘원톱’이 아닌 영화를 감히 상상하기 힘든 그의 존재는 역시 <페이스 메이커>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마라톤에서 우승후보의 페이스를 조절해 기록을 단축시키려고 전략적으로 투입하 는 선수가 바로 ‘페이스 메이커’다. 오랜 친구 종수(조희봉)의 치킨 가게에 얹혀사는 주만호(김명민)는 세상에 혈육이라고는 남동생 성호(최재웅)밖에 없는 왕년의 마라토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마라톤 국가대표 감독 박성일(안성기)은 다소 많은 나이임에도 그에게 젊은 금메달 유망주 윤기(최태준)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그는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한계로 30km 이상 뛰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하지만 선수촌에서 알게 된 유명 장대높이뛰기 선수 지원(고아라)의 응원 속에 남의 1등이 아닌 자신의 희망을 위해 달리고 싶어 한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 김명민은 이번에도 깜짝 놀랄 만한 변신술을 선보인다. 그의 이전작들을 떠올리는 건 역시 무의미하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툭 튀어나온 앞니에 하루 3끼 라면만으로도 행복하고 오직 마라톤밖에 모르는 순진한 남자지만, “나이를 먹으면 듣기 싫은 소리는 안 들려”라며 자기만의 오랜 처세술로 살아온 사연 많은 남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스포츠영화로서 마라톤 장면의 꼼꼼한 디테일을 충실히 살리고 직접 영국으로 건너가 올해 열리게 될 런던올림픽 마라톤 장면까지 재현한 것은 꽤 근사하다. 김명민에게 핀잔을 주는 이봉주 선수의 카메오 출연도 재미를 더한다. 그런데 실화가 아니기에 그 결과를 모르고 본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지원이나 동생 성호와의 관계, 그리고 페이스 메이커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려는 ‘혹사’의 순간들이 어딘가 감동을 위해 리얼리티를 희생한 결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조되는 감정과 별개로 좀더 자제력을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폭주하는 감정에도 페이스 메이커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