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못하게 추운 날. 김중현 감독은 밤늦게까지 <가시>의 예고편을 편집 중이었다. <가시>는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결과물인데, 다른 작품들과 함께 3월8일 국내 개봉이 확정됐다. 개봉하는 건 좋아도 얼른 손을 털고 새 작업에 매진하고 싶어 하는 눈치도 엿보인다. “일들이 뭔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동안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그럴 만도 했을 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되어 주목받았고 올해 초에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초청이 확정됐고 그 뒤로도 마이애미영화제, 홍콩영화제까지 아직 <가시>와 함께 갈 길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 때문에 돈의 수렁에 빠지고 악순환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젊은이를 그린 이 영화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이라는 문제를 건드렸나 보다. “내게는 과분한 평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힘들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아무래도 내 영화의 인물들이 극단의 빈곤에 있다 보니 그걸 리얼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해준 말씀 같다. 나로서는 왜곡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평이나 감상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느껴주신 거니까.” 다만 스스로의 평가는 좀 야박하다. “가끔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보면 아쉽거나 답답하다. 여유를 더 가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동료들과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같았던 촬영현장에서의 그날을 말할 때는 그도 자연스레 들뜬다. “어머니가 판타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책없이 도로에서 운전도 못하는 여배우에게 운전을 시켜가면서, 게다가 재촬영까지 하면서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찍었던 날, 다들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뭔가 같은 걸 본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제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면 좀더 예민해져서 안 보이던 것까지 보인다고 하니, 어쩌면 그의 이번 베를린행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어떤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밥맛은 아는데 밥은 지을 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있다”며 그는 겸손하게 웃었는데, 그러니 그의 올해 계획은 이런 거 아닐까? 밥맛도 잘 알고 밥도 잘 짓는 감독. 맛있는 밥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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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된 <가시>의 김중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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