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절단의 강도, 흥건한 피의 양으로 공포지수를 채점하는 시대다. 이 정도 되고 나니 궁금해지는 건 공포와 가학, 둘 중 어느 것이 무서운가다. 트렌디한 공포영화에 지쳤다면 <우먼 인 블랙>이 제시하는 공포에서 위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잊고 있었지만 음산한 기운과 삐걱거리는 복도 정도만 갖춘다면 별다르게 화려한 효과 없이도 공포라는 위엄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단출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안을 채택함으로써 <우먼 인 블랙>은 옛 고딕호러의 공포를 스크린에 재현한다. 화려한 대작 위주의 공포영화에 떠밀려 중단됐던 공포영화의 명가 해머필름이 오늘날 부활을 알리는 데는 무엇보다도 동명의 원작이 가진 힘이 컸다.
1983년 발표된 <우먼 인 블랙>은 수잔 힐의 동명 소설로 이미 명성을 떨친 작품이다. 176페이지라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실화로 착각될 정도의 호소력있는 이야기 덕분에 드라마, 연극으로 꾸준히 제작됐다. 이야기는 아내를 잃고 시름에 잠긴 젊은 변호사 아서 킵스(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아서는 소속 로펌에서 자살한 여인의 유서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외딴 마을을 찾아간다. 안개로 뒤덮인 음산한 마을. 그곳 사람들은 수상하게도 도착부터 아서에게 떠나라는 적색 경보령을 내린다.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 이유도 없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아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죽은 여인이 살던 고저택을 찾아간다. 기분 나쁜 소리가 귀를 자극하는 공간. 그곳에서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실체와 맞닥뜨린다.
아서는 무기 하나 없이 혼자 이 귀신들린 집을 탐험한다. 삐걱거리는 계단, 높은 천장, 오래된 장난감, 흔들의자 같은 소품들까지. 여느 ‘유령의 집’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이 이 집안에 존재한다. 다행인 건, 아서가 곤경에 처하는 방식이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사운드를 극대화함으로써 즉각적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대신, 영화의 주요 효과는 안개처럼 나지막이 깔린 사운드효과가 전부다. 이 경우 부각되는 건 오히려 공포에 찬 아서의 발소리인데, 그 긴장이 주는 공포효과는 꽤 크다. <우먼 인 블랙>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결은 J호러의 원혼 개념이다. 이는 수잔 힐의 원작과 달리 영화 버전에서 부각되는 요소기도 하다. 그럼에도 J호러 본연의 스타일대로 원혼이 가진 사연을 극대화하고 밀어붙이지는 않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소 헐거워지는 부작용도 있다.
<해리 포터> 이후의 첫 주연 행보라는 점에서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변신 역시 기대점이다. 아마 그가 제일 어색했던 순간은 성인이 된 지금이 아니라, 훌쩍 자랐는데도 여전히 어린 해리 포터가 쓰던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는 이제 안경을 벗었고, 아기 아빠가 되었고, 저택에서 혼자 감내해야 할 장면들을 모두 남김없이 완수해냈다. <해리 포터>의 팬이라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