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몬타나는 보스를 대신해 그의 애인, 엘비라를 데리러 가는 중이다. 보스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엘비라의 모습을 보고선 언젠가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멋진 자동차까지 빌렸다. 토니가 렌터카 차종으로 원래 마음에 두었던 것은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였다. 제너럴모터스의 디자이너, 할리 얼이 창조했던 50년대 유선형 유행의 정점이자 전후 미국의 전성기를 상징하던 아메리칸 드림의 기념비. 그는 아바나의 뒷골목에서 똘마니 노릇을 하던 어린 시절, 미국인 관광객들이 몰고 다니던 유선형 자동차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시절 어린 그에게 캐딜락은 동경의 대상이자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빌어먹을”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킨 뒤, 그 꿈은 산산조각났다.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서 아무도 캐딜락 따위는 꿈꾸지 못하는 사회, 토니는 20여년 동안 그 황무지의 맨바닥에 온몸을 갈면서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곳은 플로리다의 리틀 아바나다. 토니는 세상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을 느낀다. 그 첫 관문은 금발의 미녀를 태울 자동차를 고르는 것이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그런데 초장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수소문했건만, 1959년형 캐딜락을 렌트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토니는 친구 마놀로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어느 중고차 딜러숍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1962년형 캐딜락 컨버터블을 택했던 것이다. 차선책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날렵하게 잘빠진 근육질의 유선형 보디는 ‘포워드 룩’의 혈통을 이어받아 신호만 보내면 앞으로 질주할 태세이고, 펜더 위로 솟아오른 테일핀은 운전자에게 질주를 넘어선 활공의 쾌감을 안겨주려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무엇보다 토니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눈을 부라리듯이 툭 튀어나온 헤드라이트였다. 그 번뜩이는 눈매는 사냥감을 찾아 나선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어,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지? 하얀색 투피스 정장 차림의 엘비라는 이 차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네 양아치 대하듯 토니를 보는 게 아닌가? 토니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하긴 보스 집의 미니멀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눈여겨봤다면, 그녀의 취향을 조금이라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보스는 벤츠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토니는 영 내키지 않지만 결국 포르셰를 구입하겠다고 나선다. 번들거리는 금속 광택의 장식을 선호하는 그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지만 엘비라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지점부터 토니의 욕망이 안전장치를 해제한 뒤 폭주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욕망의 비히클’로 캐딜락이 아니라 포르셰를 택한 탓일까?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코카인만이, 이미 한계 속도를 지나쳐버린 토니의 욕망을 구동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제 남겨진 것이 파멸뿐이라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영화 시작부터 불길한 템포의 중저음을 토해내던 조르지오 모로더의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예고했던 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