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삶을 앓는다
2012-03-02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디센던트>

나는 늘 휴양지에서의 삶이 궁금했다. 얼마간 머무르는 것 말고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는 사람들의 삶 말이다. 물론 다른 삶, 요컨대 출근하고 욕먹고 야근하고 욕먹는 삶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휴양지니까 뭐가 달라도 다를 게 아닌가.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맷(조지 클루니)이 “육지 친구들은 내가 천국에 사는 줄 안다. 제정신인가? 하와이에 산다고 인생에 면역이 된다고 생각하나? 젠장, 난 서핑 안 한 지도 15년째다”라고 할 때 한방 먹었다.

때때로, 아니 대부분 인생은 오랜 질병 같아서 우리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앓는다. 맷도 그렇다. 부질없는 로또번호처럼 주르륵 어긋나는 사건들에 휘둘리고 백신도 없이 계속 앓는다. 한번 앓았으니 이젠 괜찮지 않을까. 설마! 삶은 감기처럼 몇번이나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찾아오고 그때마다 그들은, 또 우리는 아플 것이다. 그래서 엔딩이 좋았다. 삶이라는 질병에 믿을 건 한이불 덮고 사는 가족뿐이니까. 그때 개비 파히누이의 <Ka Makani Ka’ili Aloha>가 흐른다. 하와이의 음유시인이자 슬랙-키의 장인이다. ‘사랑을 훔치는 바람’ 정도의 이 제목은 ‘키파훌루 지역에 부는 산들바람’의 별칭이기도 하다. 애잔한 올드 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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