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것들> <청계천의 개>를 통해 새로운 재능으로 떠올랐던 김경묵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줄탁동시>가 드디어 개봉한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매진 사례로 기회를 놓친 이들에겐 즐거운 소식이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등급 심의 문제로 사전언론시사가 당일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개봉일은 지킬 수 있었지만 “얼마나 센가 한번 보자며 팔짱 끼고 보는 관객이 있을까봐 걱정”이라는 것이 감독의 말이었다. 그에게 개봉 버전과 연출 의도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언론시사가 취소됐었는데.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인물의 고통이나 인물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작품 안에서 의미를 읽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심의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의해 얼마나 자의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지 체감했다. 로테르담에서 한국의 검열제도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요즘은 한국도 문화 수준이 꽤 높아져서 별 문제 없이 통과할 것 같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웃음)
-재심의 버전은 어떻게 다른가.
=성기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개봉일이 잡힌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심의 결과를 역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장면이 캠코더로 포르노를 촬영하는 장면이니까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 오히려 진짜 포르노영화처럼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농담으로 영등위 위원들이 그 장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도와주려고 하셨던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웃음)
-<줄탁동시>는 <얼굴 없는 것들> <청계천의 개>보다 충격효과가 덜하다. 이전보다 드라마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닐까. 전작들은 내가 1인칭의 시점에서 만든 영화들이었다. 마치 일기를 쓰듯 내 감수성을 그대로 담았었고. 하지만 계속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지금은 그때보다 여유가 생겼다. 영화 속 인물과 나 사이에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줄탁동시>는 2인칭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에게 내가 말을 걸고 있는 느낌이다.
-1부는 탈북자 소년이 주인공이고 2부는 게이 소년이 주인공이다. 3부에서는 그 둘이 분신관계임을 보여준다. 1, 2부를 먼저 만들었나, 아니면 3부에서 1, 2부로 가지를 쳐나간 건가.
=3부를 제일 먼저 구상했고, 3부에 내 의지가 가장 많이 담겨 있다. 그다음에 캐릭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온 건 <얼굴 없는 것들>의 소년이었다. 그 인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인물을 고민하다가 탈북자 소년을 떠올리게 됐다. 하지만 탈북자 소년과 게이 소 년을 분리해 생각하진 않았다. 둘은 하나의 인물에서 분열된 존재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겐 그들이 내 마음의 상태를 대변해줄 수 있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독립영화에서 종종 자살이 서사적 장치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두 소년의 자살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그들의 자살을 구체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이상 머물 곳도 갈 곳도 없는 그들의 상태가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봤다. 또 죽음은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의식의 계기로 작용하는 거다. 그런 이유에서 일부러 그들의 죽음을 현실적인 사건인지 잠재적인 사건인지 알 수 없게 모호하게 처리하려고 했다.
-준과 순이가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시퀀스에서 로드맵을 이용한 점프컷이 개념적으로 비칠까봐 염려하진 않았나.
=많이들 걱정했고 빼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준과 순이의 상황을 공간적으로 드러내고 싶어서 끝까지 고집했다. 내국인도, 이주노동자도 아닌 위치의 그들이 일자리에서도 쫓겨나고 가족으로부터도 밀려났을 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관광지를 떠올렸다. 그곳에서 그들은 같은 언어, 같은 피부색을 가졌으면서도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차기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한 것도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런 면도 있다. 뒤늦게 철드나보다. 아닌가, 이것도 그냥 철든 척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웃음) 아무튼 공동작업을 하고 있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다. <영등포 천일야화>로 가제만 정해놨고 아직 편집 전이다. 성매매 여성과 그들의 공간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