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처럼 이미지만 허상으로 남아 구천을 떠도는 배우도 흔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걸 앤디 워홀의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어쨌거나 우리가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아는 모든 것은 이미지들이다.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치마를 날리는 <7년 만의 외출>(1955)의 먼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의 먼로. 그리고 수면제 과용으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있는 먼로.
사실 그녀는 꽤 좋은 배우이기도 했다는 걸 세상은 기억하지 않는다. 존 휴스턴의 <기인들>(1961) 같은 후기작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나? 그녀가 메소드 연기(배우가 극중 인물에게 완벽하게 몰입해서 연기하는 방식)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배우였다는 사실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먼로의 야망이 본격적으로 폭발했던 건 <왕자와 무희>(1957) 때였다. 발칸반도 소국의 왕자가 런던에 갔다가 미국인 쇼걸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 코미디는 먼로가 처음으로 할리우드를 벗어나서 찍은 영화고, 감독은 셰익스피어극의 대가인 로렌스 올리비에였다. 물론 현장이 제대로 굴러갈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나인 하프 위크>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의 킴 베이싱어가 갑자기 영국으로 건너가 제임스 아이보리와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보시라.
<왕자와 무희>의 현장은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을 낳았다. 올리비에와 먼로는 끝없이 삐걱거렸고, 스탭들은 변덕스러운 할리우드 스타를 미워했다.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주인공인 콜린 클라크의 말이 이를 함축한다. “올리비에 경은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배우이고, 마릴린 당신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스타예요. 잘될 리가 없죠.”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당시 <왕자와 무희>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다큐멘터리 제작자 콜린 클라크가 쓴 논픽션 <왕자, 무희와 나>와 <마릴린 먼 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각색한 영화다. 1956년. 당대 최고의 스타 마릴린 먼로(미셸 윌리엄스)가 <왕자와 무희>의 촬영을 위해 영국으로 간다. 세상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촬영이 시작되지만 먼로는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래너)와 끝없이 충돌하고 남편인 극작가 아서 밀러(더그레이 스콧)과 불화를 겪으며 지쳐간다. 그런 와중에 먼로는 조감독인 콜린 클라크(에디 레드메인)의 친절함에 의지하기 시작한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명확히 말하자면 ‘전기영화’는 아니다. 관객이 기대할 법한 거대한 사랑의 드라마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솔직히 그게 사실이라는 근거도 없지 않은가). 대신 사이먼 커티스 감독은 <왕자와 무희> 현장의 불안한 일주일을 통해 먼로라는 아이콘의 숨겨진 이야기를 재연하고 당대 영화현장의 유쾌한 모순들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한다. 특히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종종 할리우드의 메소드 연기법에 대한 영국 영화인의 조롱처럼 보이는 구석도 있다. 극중 마릴린 먼로는 메소드 연기를 제창했던 리 스트라스버그의 아내인 폴라 스트라스버그(조이 워너메이커)를 데리고 다니며 “그냥 흉내만 내!”라고 윽박지르는 올리비에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다. 영국과 미국의 연기론이 부딪히는 이 장면은 먼로가 처한 문화적 차이, 할리우드와 영국 영화계의 간극을 절묘하게 보여주며 영화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동한다.
주연배우들은 실제 인물과 외형적으로는 닮지 않았지만 유사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먼로에게 주연도 빼앗기고 남편인 올리비에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비비안 리는 한때 주연급 스타였다가 몰락한 줄리아 오먼드와 묘하게 겹치고, 올리비에 역시 할리우드에서의 명성에 목을 매달았던 한때의 케네스 브래너와 닮은 구석이 있다. 특히 영국 배우들에게 둘러싸여 시대적 아이콘을 연기해야 하는 미셸 윌리엄스는 <왕자와 무희>를 찍던 시절의 마릴린 먼로와 기가 막히게 겹친다. 사실 마릴린 먼로라는 아이콘을 연기하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미셸 윌리엄스는 마릴린 먼로를 완벽하게 흉내내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위태로운 모험에 뛰어든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자신을 먼로라는 아이콘에 투영해낸다. <CNN>은 “미셸 윌리엄스는 사라지고 마릴린 먼로만 남았다”고 말했는데, 큰 오해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는 마릴린 먼로와 미셸 윌리엄스가 겹치거나 비껴가며 공존한다. 위험천만하게 아름다운 연기다.